대기업 파견금지, 법으로 못박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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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금형·용접과 같은 뿌리산업 업종의 대기업 파견을 금지하고, 사내 하청도 제한하는 내용을 법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상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파견근로자보호법이다. 야당과 노동계가 “재벌과 대기업을 위한 법”이라며 반발하는 데 따른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뿌리산업엔 허용한 파견법
당정, 야당·노총 반발에 수정
사내하청도 엄격 제한키로
경총 “기간제법 철회 이어
노동개혁 대폭 후퇴시키나”

그러나 일각에선 기간제근로자보호법 철회에 이어 파견법까지 손보면서 노동개혁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법안 수정작업과 함께 산업안전과 같은 각종 정부 공모사업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런 사업을 따내 예산 지원을 받는 한국노총을 겨냥한 조치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31일 “당정은 국회에 제출돼 있는 파견법에 ‘뿌리산업과 관련된 업종이라 하더라도 대기업에는 파견을 금지한다’는 형태의 문구를 삽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지원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도 “대기업의 사내 하청업체에 대해서도 뿌리산업에 해당하면 제한이 필요하다는 데 당정이 의견 접근을 봤다”고 덧붙였다. 다단계 하도급 방식을 활용해 파견근로자를 편법 사용하는 걸 원천봉쇄하겠다는 얘기다.

뿌리산업은 용접·소성가공·주조·금형·열처리·표면처리와 같은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이다. 정부와 여당이 낸 파견법에는 뿌리산업에는 파견을 허용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두고 야당과 노동계는 “자동차나 조선과 같은 대기업에는 뿌리산업과 직결되는 업무가 많다”며 “사실상 대기업에 파견을 대폭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정부·여당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지 않으면 파견법 통과가 힘들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기업 파견 금지를 법에 명시하는 수정안을 꺼냈다.

경영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은 “기간제법 철회에 이어 대기업을 겨냥해 파견법까지 손질하는 것은 고용시장에서 기업의 인력운용에 필요한 차·포를 다 떼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대기업이 중소기업법상 300인 미만인 뿌리산업 업체를 사내 하청이나 다단계 하도급과 같은 방식으로 무분별하게 끌어다 쓰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대기업 파견근로 금지는 이런 편법적인 악용 사례를 예방하는 조치”라며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라는 파견법 개정안의 원래 취지는 훼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기간제법 철회에 따른 단시간 근로자 보호 방안도 별도로 추진하기로 했다. 일용직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 흡수해 파견법으로 보호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일용직이 파견회사의 정식 직원이 되고, 기업에 파견돼 일하게 된다. 파견이 끝나면 휴업수당과 함께 훈련을 받으며 숙련도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상용형 파견제다.

정부 "한국노총 작년 32억 따낸 공모사업 심사 강화”

노동계와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는 것이 유화책이라면, 한국노총에 대한 예산 지원 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압박 카드다.

이를 두고 한국노총에 대한 돈줄 옥죄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고용부는 실직자 교육, 산업안전 관련 사업을 공모를 통해 민간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32억원이 공모사업 형식으로 한국노총에 지원됐다.

임무송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앞으로 공모사업은 해당 기관의 역량과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올해 예산에 반영된 한국노총 중앙연수원 수리비 14억원에 대해서도 집행 과정을 실사해 예산 집행을 투명하게 관리할 방침이다.

◆파견제, 사내 하청, 기간제=근로자가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겨 그 회사의 지휘에 따라 일하는 것을 파견근로라고 한다. 사내 하청은 원청업체와 하청 계약을 맺은 회사의 직원이 원청업체 사업장 안에서 일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근로자에 대한 업무 지휘를 하청업체가 한다는 점에서 파견과 다르다. 원청업체가 직접 업무 지시를 하면 불법이다. 기간제는 쉽게 말하면 계약직이다. 회사와 일하는 기간과 업무를 명시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일한다. 파견과 다른 점은 일하는 회사에 직접 고용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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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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