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시어머니로…‘막장 드라마’ 징계 정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기사 이미지

드라마 압구정 백야 [사진 MBC]

패륜 논란을 빚은 임성한(56) 작가의 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징계가 적합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패륜 논란 단골’ 임성한 작가 작품
법원 “가족 시청 시간대에 부적절
지상파, 국민 윤리 수준 부합해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차행전)는 MBC가 “방통위가 내린 경고 처분 등의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방통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방통위의 처분이 적절했다”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 대한 정부의 행정 처분과 관련한 법원의 첫 판결이다.

압구정 백야는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평일 오후 8시55분~9시30분에 방송됐다. ‘15세 이상 시청 가능’ 등급이었다. 이 시간은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포함된다.

기사 이미지

`압구정백야`의 한 장면. [사진 MBC `압구정백야` 영상 캡쳐]

드라마는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이 복수를 위해 엄마의 의붓아들을 유혹한 뒤 며느리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 중 모녀가 고부 관계가 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폭언을 하고 물을 뿌리며 따귀·머리 등을 때리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막장 드라마 논란이 일었다.

방통위는 지난해 심의위원회를 열고 ‘관계자에 대한 징계’와 ‘경고’ 처분을 잇따라 내렸다. 사회 윤리 및 공중도덕에 반하고, 청소년 시청자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방송사는 “드라마의 전체 맥락을 고려하면 폭언과 때리는 장면도 사회 통념의 범위 내에 있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를 제재하는 것은 시청자를 외면하는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지상파 방송사는 가족 시청 시간대에 가족 구성원 모두의 정서와 윤리 수준에 적합한 내용을 방송할 책임이 있다”면서 “극 중 대사 등이 사회적 윤리의식과 가족의 가치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임 작가가 쓴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대해 방통위가 제재 처분을 내렸을 때 방송사가 임 작가와 앞으로 계약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미뤄 방송사도 문제의 소지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원없이 썼다"…임성한 작가 은퇴
[드라마 썰전(舌戰)] 우리가 막장 드라마에 꽂히는 이유

1997년에 데뷔해 지난해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임성한 작가는 ‘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 등 10편의 드라마를 썼다. 98년에 그가 쓴 MBC의 ‘보고 또 보고’는 일일드라마 최고 시청률(57.3%)을 기록했다.

흥행 작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황당한 설정 등으로 막장 드라마의 대표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12명의 등장 인물이 사망하는 내용의 ‘오로라 공주’ 방영 때는 시청자들이 작가 퇴출 운동을 벌였다.

이유정·이지영 기자 uu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