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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점 - 대만 총통 선거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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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2016년 1월 18일 30면>
대만 대선에 따른 양안 관계 변화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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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할지라도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4년 전 대만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외친 말이다. 그런 그가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지도자가 됐다.

차이잉원은 ‘대만의 딸’로 불린다. 대만의 자랑스러운 여성이란 의미가 있지만 대만 독립을 당의 강령으로 삼고 있는 민진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뜻도 깔려 있다. 우리가 이번 대만 대선의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다. 대만의 지도자 선출은 대만 국내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중국과의 미묘한 양안(兩岸) 문제가 되기도 하고 또 미·중 사이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서 미·중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차이잉원의 당선 배경엔 대만 경제의 침체와 경쟁 상대인 국민당의 내분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지난 8년간 집권한 국민당 출신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친(親)중국화 정책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다.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대만 내 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생겼고, 대륙으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인재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대만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마잉주가 추구한 중국과의 경제협력 과실은 일부 사람만 향유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대만인의 정체성 변화도 눈길을 끈다. 2008년 자신을 대만인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48.4%에서 2014년엔 60.4%로 뛰었다. 반면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라고 응답한 이는 43.1%에서 32.3%로, 중국인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4.5%에서 3.3%로 줄었다.

차이잉원은 양안 정책과 관련해 ‘현상 유지’ 정책을 추구하겠다고 말한다. 과거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처럼 대만 독립을 서두르지도 않을 것이고, 또 마잉주처럼 중국에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중국은 차이잉원의 당선에 대해 ‘대만 독립의 분열 행동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양안 문제를 매번 다음 세대에게 미룰 수 없다며 돌파구 찾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안 관계가 마잉주 때와 같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최근 한국의 걸그룹 멤버인 대만의 쯔위(본명 저우쯔이·周子瑜)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기를 흔든 게 양안 네티즌 사이의 격렬한 감정싸움을 유발했듯이 앞으로 양안 간 긴장은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연말 미국 대선에서 대중 강경파가 당선될 경우 양안 간 파고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미·중 갈등은 한반도 안정에 불안 요소다. 북핵과 더불어 동북아의 불안정 요인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양안 관계는 남북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동된다. 대만과 북한은 서로를 대(對)중국 정책의 지렛대로 활용한 적이 있다. 대만이 1990년대 후반 핵폐기물을 북한에 수출하려 했던 것이 좋은 예다. 대만 지도자 변화에 따른 양안 관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우리의 외교 및 안보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한겨레 <2016년 1월 18일 31면>
민주주의 저력 보여준 대만의 정권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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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치러진 대만 선거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국민당의 8년 집권이 끝나고 다시 민진당 시대가 열렸다. 1996년 첫 총통(대통령) 선거에선 국민당이,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선 민진당이 승리한 바 있다. 선거 역사는 길지 않지만 민주주의가 착실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패를 가른 건 역시 경제였다. 마잉주 국민당 정권은 633공약(6%대 경제 성장, 개인 소득 3만 달러, 3% 이하 실업률)을 전혀 지키지 못했다. 국민의 실질소득은 정체된 가운데 투기자본이 대거 유입돼 부동산 값만 급등했다.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초임이 2만2000대만달러(약 80만원)인 젊은이를 이르는 ‘22K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국민당의 지지층인 중산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는 역대 총통 선거에서 가장 큰 표 차로 낙승했다.

국민당 정권의 친중국 노선 역시 심판대에 올랐다. 마잉주 총통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국가 전략으로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의 관광객과 투자는 늘어났지만 국내 산업기반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고착돼 가고 있다. 대중국 종속이 구조화된 것이다. 선거 막판에 민진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정도로 큰 이슈가 된 ‘쯔위 사건’은 지금의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비판적인 민심을 잘 보여준다. 쯔위는 한국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대만 소녀로,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국 쪽의 거센 항의를 받자 결국 공개 사과했다.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최고지도자로 뽑힌 차이잉원 후보는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대만 독립이라는 민진당의 전통적인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현실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가 최대 이슈인 활력 있는 경제, 빈부 격차 및 세대 갈등 해소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미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양안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도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본토 출신자와 대만인의 여전한 갈등 역시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대만은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분단국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동질성이 있다. 둘 다 장기 독재정권을 경험하고 ‘아시아의 4룡’으로 불린 것도 일치한다.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볼 때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대만에 대해서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대만이 현재 겪는 문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대만의 성공과 실패 모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쉽지 않은 대내외 여건에서 주기적으로 정권 교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만은 우리에게 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논리 vs 논리
“대만 성공과 실패는 타산지석” … “동북아 불안정 요인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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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민진당 대선 후보 차이잉원이 국민당의 8년 집권을 끝냈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가 지난 16일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타이베이 AP=뉴시스]

지난 16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거뒀다. 같은 날 이뤄진 총선에서도 민진당은 113개 의석 가운데 63석을 획득, 35석에 그친 국민당에 압승을 했다.

이러한 선거 결과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비슷한 분석을 내놓는다. 한겨레는 “승패를 가른 건 역시 경제”라고 잘라 말한다. 중앙 또한 “차이잉원의 당선 배경엔 대만 경제의 침체”가 있다고 평가한다.

대만 경제의 어려움을 낳은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서도 두 사설의 입장은 비슷하다. 8년 전 대만 대선에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후보는 “양안 모두 이익을 얻기 위한 출발점은 경제와 문화 교류 정상화”에 있다고 호소했다. 나아가 중국과의 전면적인 ‘통상’ ‘통항’ ‘통우’라는 ‘대삼통’ 정책을 내세워 총통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과 한겨레는 이러한 정책이 오히려 대만 경제에 독이 됐다고 평가한다. 중앙은 대만인들이 품고 있는 “마잉주 총통의 친중국화 정책에 대한 경계심”을 소개한다. 2008년 이후 중국과의 교역은 50%나 늘었고 대만 무역의 중국 의존도도 30% 가까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대만은 극심한 경제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의 지적대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대만 내 산업 공동화 현상이 생겼고, 대륙으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인재 유출 현상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또한 대만 경제의 “대중국 종속이 구조화”되는 모습을 꼬집는다. “중국의 관광객과 투자는 늘어났지만 국내 산업기반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고착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대만 분리독립주의자인 차이잉원 후보가 당선된 데는 이러한 양안 관계의 불편한 현실이 놓여 있다.

하지만 차이잉원 후보의 당선을 바라보는 두 사설의 시선은 완전히 엇갈린다. 한겨레가 대만의 ‘민주적 정권 교체’에 강조점을 둔다면, 중앙은 국제 정세 변화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국민당 집권 8년 동안 무너져 내린 대만의 경제 상황을 조목조목 파고든다. “마잉주 국민당 정권은 633공약(6%대 경제 성장, 개인 소득 3만 달러, 3% 이하 실업률)을 전혀 지키지 못했”으며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초임이 2만2000대만달러(약 80만원)인 젊은이를 이르는 ‘22K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묘한 기시감을 준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우리 현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겨레는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분단국이라는 점에서 (대만은) 우리나라와 동질성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게 한다.

“대만이 현재 겪는 문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대만의 성공과 실패 모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한겨레의 평가에는 4·13 총선이 서서히 다가오는 즈음에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 보인다. 이 점은 “주기적으로 정권 교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만은 우리에게 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사설의 결론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반면 중앙은 우리나라 상황보다는 차이잉원 후보 당선으로 생길 수 있는 동북아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차이잉원은 대만 분리독립의 이론적 기반인 ‘양국론’과 ‘일국일변론’을 내세운 장본인이다. 지금은 양안 정책과 관련해 ‘현상 유지’ 정책을 앞세우나 언제고 대만의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중앙이 “앞으로 양안 간 긴장은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하는 이유다.

나아가 중앙은 “중국은 차이잉원의 당선에 대해 ‘대만 독립의 분열 행동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경계심을 나타냈다”는 점도 지적한다.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북핵과 더불어 동북아의 불안정 요인 하나가 추가된 셈”이라는 중앙의 평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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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동서 냉전시대, 갈등의 중심에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그러나 냉전의 산물인 지금의 양안 관계, 나아가 우리 정치의 핵심에는 ‘경제’가 있다. 두 사설은 차이잉원 후보의 당선을 우리 정치에 끼치는 영향과 동북아 정세 변화라는 서로 다른 측면에서 평가 분석한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에 ‘경제’가 놓여 있다는 점에서는 두 사설의 생각이 같아 보인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