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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투기꾼에게 물어뜯기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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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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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지난주 상하이와 홍콩에서 벌어진 1차 화폐전쟁의 승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상하이 증시의 서킷 브레이커를 없애고, 홍콩에선 무차별로 달러를 살포하고 위안화와 홍콩달러를 싹쓸이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상하이와 홍콩 시장의 주인이 누군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국제 투기꾼들은 백기 투항했다.

 하지만 탐색전에서 일시적인 판정승일 뿐이다. 여전히 국제시장의 ‘달러 강세-위안화 약세’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금리를 계속 올릴 분위기고 중국 경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곤두박질하고 있다. 올해 중국은 6.5% 성장을 장담하지만 철도 운송량, 전력 사용량을 보면 5% 성장도 자신하기 어렵다. 앞으로 헤지 펀드들의 2차·3차 공격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물론 중국과 홍콩이 똑같은 운명 공동체는 아니다. 홍콩은 달러 페그제가 무너지면 금리가 치솟아 부동산 시장이 붕괴될지 모른다. 홍콩이 1998년 외환시장에 19조원을 쏟아붓고 증시의 시가총액 5%를 사들여 가까스로 마지노선을 지켜낸 것도 이 때문이다. 악착같이 페그제에 목숨을 걸어야 할 운명이다.

 반면 중국은 위안화 절하에 대해선 헤지 펀드들과 이해관계가 똑같다. 문제는 속도다. 중국은 지난해 달러 강세로 위안화 가치가 급등하자 복수통화바스켓으로 바꾸었다. 점진적인 위안화 절하로 수출을 늘리고 경기를 부추기겠다는 게 중국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 속셈을 눈치챈 핫머니들이 한꺼번에 탈출하면서 탈이 났다. 환율은 너무 급하게 올랐고, 증시는 폭락했다. 시장의 복수였다.

 요즘 국제 금융시장의 유행어는 ‘칵테일 위기’(중국 경착륙+저유가 등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는 위기)다. 중국 경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위기로 치닫는다고 보는 건 무리다. 중국처럼 1인당 소득 1만 달러 국가의 5~6%대 성장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다 중국은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오히려 차이나 리스크의 본질은 따로 있다. 바로 제도와 사람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막강한 파워로 시장에 적절히 개입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끌어 오는 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그런 위기대처 능력이 최근 한계를 맞고 있다. 지난해 증시가 폭락하자 중국은 대주주 매도 금지와 서킷 브레이커 등 원칙 없는 땜질식 규제들을 쏟아냈다.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무모한 도전들이었다. 이런 비상 조치들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앞에 버티고 있는 또 하나의 장벽은 미국이다. 그동안 미국은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용인해 왔다. 하지만 추가 절하에 대해선 “전 세계 환율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자칫 상대적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가 평가절상돼 미국의 세계 전략이 뒤흔들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은 무역흑자 5000억 달러로 세계 1위 아니냐”고 공격하면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할 명분이 사라진다. 갈수록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신세다.

 중국 경제가 30년 만에 ‘세계의 기관차’에서 ‘위기의 뇌관’으로 둔갑하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과도한 투자로 과잉부채·과잉설비·공급과잉의 3중고를 앓고 있다. 부동산·주식시장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새해 벽두에 중국발 공포로 이미 전 세계 증시의 시가총액 5000조원이 증발해 버렸다. 아직 통제 불능은 아니지만 중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중국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크게 얽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상하이 증시와 동조화(커플링) 지수가 0.75로 가장 높은 곳이 서울 증시고, 우리는 무역 2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아무리 강 건너 불구경이 최고라 해도 투기꾼에 물어뜯기는 중국 경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연일 퍼펙트 스톰·칵테일 위기·공포지수 같은 섬찟한 제목들이 세계 주요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사방에 온통 불길한 징조 투성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도 모두 신경을 곤두세울 때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