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인 ‘후광효과’ 노려 SOS … 김황식 전 총리 3명 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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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황식 전 국무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문성근 영화배우, 박상원 탤런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9일 대구시 송현동 남호균(달서병·전 청와대 행정관) 20대 총선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눈에 익은 얼굴이 남 후보 지지자들 앞에 섰다.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드라마 ‘내 딸, 금사월’에 출연한 탤런트 박상원씨였다.

[뉴스 속으로] 총선 출마자 후원회장 맡은 명사들

박씨는 남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박씨를 본 참석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스위치를 눌렀다.

 박씨는 “남 후보가 그동안 국회와 청와대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에 후원회장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개소식 후 식사자리에선 “여기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이랑 탤런트 박상원이랑 친하대…”라고 수군거리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박씨에게 악수를 청했다.

 남 후보는 “국회 보좌관 시절에 만나 사회 현안에 대해 토론을 자주 하던 사이”라며 “후원회장 제안을 의외로 흔쾌히 받아 주셨다”고 말했다.

남 후보는 거리에서 명함을 돌릴 때 ‘박상원씨랑 친한 분이라면서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그는 “정치신인 입장에선 인지도를 올리는 효과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명사(名士)를 후원회장으로 내세워 인지도를 높이려는 예비후보가 적잖다. 더불어민주당 조한기(서산-태안) 예비후보는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2003~2004년) 보좌관 출신이다. 당시 인연을 맺은 문성근씨를 후원회장으로 내세웠다.

조 후보는 “사람들은 그를 (민주당 대표 대행을 지낸) 정치인보다는 배우로 생각한다”며 “그런 분이 후원회장을 맡아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정책 구상에 대해 지역주민께 드릴 말씀이 많지만 그전에 나의 존재를 알리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유명인 후원회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 전신) 혁신위원으로 활동했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더민주 이헌욱(분당갑)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이다.

서울대 출신 변호사인 이 후보는 “대학 인맥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조 교수와 친해졌다”며 “‘현장 유세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사진 촬영과 영상편지 제작 정도는 얼마든지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2012년 총선 땐 막말 논란을 일으킨 ‘나꼼수’ 멤버 김용민(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아 구설에 올랐다.

 김 후보의 ‘라이스를 강간해 죽이자”는 발언이 공개된 뒤엔 트위터에 “관타나모 캠프에서 벌어진 (미군의 수용자) 성폭행을 비판하면서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다가 논란을 키웠다. 김 후보는 당시 성인 방송에서 막말을 하면서 ‘관타나모 사건’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예비후보 3명의 후원회장을 한꺼번에 맡았다. 새누리당 허용범(서울 동대문갑) 예비후보는 2014년 6월 지방선거 때 김황식 서울시장 경선후보 캠프에서 비서실장을 맡은 게 인연이 됐다. 이번 선거에선 출마자와 조력자의 위치가 바뀐 셈이다.

허 후보는 “법조계와 관가에서 신망이 두터운 분이 후원회장을 맡아 주신 것만으로도 후보자에게 용기를 준다”며 “대중적으론 전임 총리의 신임을 얻은 사람이란 이미지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총리 재직 시절과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대변인을 맡았던 최형두(의왕-과천)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직도 수락했다. 최 후보는 “출마 지역에선 김 전 총리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이어서 ‘그분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최근 같은 당 박수영(수원정) 예비후보 후원회장이기도 하다. 김 전 총리는 최근 박 후보의 사무소도 방문해 “대학 후배, 공직 후배이고 다양한 행정 경험과 미국 유학으로 실력을 쌓은 좋은 후배”라고 격려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2명을 후원한다. 더민주 백혜련(수원을)·이후삼(제천-단양) 예비후보다. 백 후보는 강 전 장관 재직 시절 검사였고, 이 후보는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강 전 장관의 홍보본부장이었다.

강 전 장관은 “백 후보는 내가 장관 시절 눈여겨봤던 검사고, 이 후보는 과거 선거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후원회장을 맡았다”며 “여러 여건상 다른 분들의 요청까지는 받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민주 위성곤(서귀포) 후보는 정세균 의원에게 후원회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 예정인 현역 정치인이 다른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으로 나선 사례다.

위 후보는 “중앙정치 인맥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 의원을 모셨다”며 “정 의원은 ‘나도 내 선거를 치르느라 바쁠 테니 제주도까지 자주 부르지 말라’는 조건을 제시하곤 웃으셨다”고 말했다. 더민주 김상곤 인재영입위원장도 경기교육감 시절 인연을 맺은 학원장 출신 박정(파주을) 후보의 후원회장이다.

 과연 후원회장이 정치신인 당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경희대 정종필(정치외교학) 교수는 “시민 의식 수준이 과거와 달라져 후보자가 어떤 명사와 친하다는 점 때문에 표를 던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원회장을 통해 후보를 인식하게 되더라도 그 단계에서 참신한 비전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유권자가 더욱 크게 외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도 “유명인에게 후원회장을 맡기는 효과는 (유권자 중 극소수인) 일부 엘리트 그룹에만 국한될 것”이라며 “국민과 여론의 주목을 이끌어 낼 자기만의 색깔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S Box] 후원금 한도, 현역 의원은 3억 예비후보는 1억5000만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대구 수성갑) 예비후보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후원회 개설 한 달여 만에 예상보다 조금 빨리 후원금 모금을 마감한다”고 밝혔다. 후원금 모금 한도를 모두 채웠다는 뜻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당이 후원회를 만들어 모금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는 총선을 앞두고 후원회를 열어 ‘선거실탄’을 마련할 수 있다. 예비후보의 경우 연간 1억5000만원까지 모금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김부겸 후보처럼 한 달 만에 모금 한도를 채우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3선 의원 경력의 김 후보와 달리 인지도가 낮은 대부분의 예비후보는 한도액을 채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예비후보들이 유명인을 후원회장으로 내세우려는 데는 모금액을 늘리려는 포석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후원금 한도액에서 현역 의원과 차별을 받고 있는 예비후보 입장에선 어떻게든 모금 한도를 채워야 하는 게 과제가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역 의원의 후원금 한도액은 총선이 있는 해엔 평년의 두 배(1억5000만원→3억원)로 늘어난다. 인지도가 높아 모금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현역 의원이 한도액 면에서도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게 예비후보들의 불만이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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