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아이켄베리 교수 “미 대북 정책,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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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영·오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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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가 최근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또한 미국 차기 대통령 유력주자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면 북핵 위기에 적극 대처할 것이라고 전망했죠.


대한민국 국회 내 독립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지난 13일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거대 전략: 한미관계의 미래(America’s Grand Strategy in East Asia: The Future of US-Korean Relations)’ 강연에서입니다.


아, 그런데 아이켄베리 교수가 누구나고요? 먼저 약력을 살펴볼까요.


1954년 출생
1985년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1993년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2001년 조지타운대 교수
2004년~ 프린스턴대 및 우드로윌슨 국제관계대학원 석좌교수
2008년~ 경희대 석좌교수
저서: 『경쟁자 없는 미국』(2002년), 『국가권력과 세계시장』(2003년),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와 제국주의 야망』(2005년) 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선 외교·안보정책 자문을 맡기도 한 그는 정치와 국제 관계 전문가입니다.

2013.11.21

아이켄베리 교수 [사진=중앙포토]


아이켄베리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혔어요.


하지만 오바마와 클린턴의 외교안보 자문역이기에 '사견'도 유심히 볼 건 아니라고 해요. 더군다나 올해 대선을 전후한 미국의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전략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거죠.


아이켄베리 교수의 강연 일부를 요약해 옮겨 볼게요.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부시 정부의 강경책과 달리 북한과 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요구로 무산되자 '전략적 인내'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전략적 인내 정책은 (계속된 핵실험으로) 현상유지 효과조차 없었고 이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걸까요. 강연은 이어집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대처할 시간이 부족하며,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인식으로 북핵을 주요 의제 삼아 적극적인 대책을 취하려 할 것이다.
"


아이켄베리 교수는 힐러리 클린턴의 '적극적인 대책'이 무엇일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강력한 제재를 담은 강경책이 될 수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북한이 ‘죽더라도 같이 죽자’며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다른 선택지인 ‘오프램프(off-ramp: 갓길)’를 열어 주는 유화책이 될 수도 있다고 시사했죠.


이를테면 “압박을 가하되 고속도로 출구로 나가는 대화의 통로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자"는 건데요. 아이켄베리 교수는 "(미국의) 이란과의 협상도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통일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조언했어요.


바로 "북핵을 보다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북한의 붕괴보다는) 김정은 일가가 평양을 떠나게 하는 체제 변경이나 정권교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한편,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속내도 다음과 같이 추론했습니다.


"중국 측이 바라는 게 통일도, 북 정권 붕괴도 아니지만 김정은을 점점 더 싫어한다. 조금 다른 새로운 지도자가 생기거나 새로운 군사정권이 탄생해 협상을 할 수 있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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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켄베리 교수에게 질문하는 강희영 TONG청소년기자


그래서 TONG기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대북 제재든 협상이든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데 어떻게 중국을 움직여야 하느냐’고요. 그는 좋은 질문이라고 칭찬한 뒤 다음과 같이 답변했어요.


“한미 군사합동 대응이 중국에 압박이 될 수 있다. 북이 도발할 때마다 중국이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으로 몰고 가야 한다. 중국은 한·일의 핵개발 시도를 가장 경계한다."


마침 강연이 있던 날,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담화를 발표하면서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거론했는데요.


같은 시간대(현지 시간 12일) 신년 연설을 한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북한을 마치 관심을 원하는 어린애 다루듯이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밝힌 건데요. 이에 중국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며 이틀 후인 15일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죠.


아이켄베리 교수의 말대로 한미 군사합동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에 중국이 곧장 반응한 게 신기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일 강연에서 아이켄베리 교수는 중국을 압박하기 보다는 "통일 한국이 중국에 이롭다는 비전을 제시해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더 강조했어요.


"통일 당시 독일은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에게 ‘통독이야말로 소련에 도움이 된다’고 꾸준히 설득했다. 중국은 역내 고립감(fear pressure)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포용 정책이 필요하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중국의 부상이 위기를 불러올 것이란 폴 케네디나 로버트 길핀 등의 비관론적 견해와 달리 “중국의 굴기(?起)는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에 적대적이지 않다. 중국은 미국을 동아시아 밖으로 내몰 의사도, 그럴 힘도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중국은 동아시아 내에서 열강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혜택을 받는다는 거죠.


아이켄베리 교수가 대중국 포용 정책 자신있게 주장하는 데에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어요. 오바마 대통령 역시 신년 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말했고요.


중국이 경제력에 있어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해 왔지만 군사력에 있어서는 여전히 미국이 수퍼파워임을 아이켄베리 교수는 내내 강조했답니다.


9·11 테러 이후 동남아시아 국가들(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등)과 맺어 온 일련의 안보협약을 일일이 열거하며 미국의 대아시아 영향력이 안보 면에서 더 커졌다고 주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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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열외라고 아이켄베리 교수는 못 박았습니다.

“워싱턴의 누구도 대북 군사적 옵션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이켄베리 교수는 최근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참석자들의 우려 섞인 질문에도 조심스레 답했습니다.


“두 정부 간의 외교적 합의는 긍정적이지만 이로써 위안부 문제가 다 끝난 건 아니다. 두 사회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는 "아베 정부가 기존의 우익 지도자들보다 한 발짝 더 나간 데 대해서는 좋은 시작인만큼 평가해 줄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일본의 우익이나 한국의 진보세력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 11월, 3년만에 한중일정상회담이 이뤄졌다. 회담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박근혜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 [사진=중앙포토]

지난 11월, 3년만에 한중일정상회담이 이뤄졌다. 회담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박근혜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 사진=중앙포토

요즘 한중미, 한중일 관계가 복잡하고 위안부 합의, 북핵 문제 등 여러모로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죠. 그런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아이켄베리 교수의 강연을 듣고 나니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신문 1면 헤드라인이 무슨 뜻이었는지 감이 잡히는 듯 했어요.


이 기사 역시 TONG 독자들이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강희영(태원고 1)·오영란(매산여고 2)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태원고·매산여고지부

도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 제공=더미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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