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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대출금 짓눌린 신혼…월 128만원 빚 갚아 “애 가질 엄두가 안 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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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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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 차 전업주부 박혜진(28·여)씨는 결혼 전 6개월 동안 신혼집을 구하러 노원구·도봉구 등 서울의 동북 지역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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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 차인 양진우(34)?박혜진(28)씨 부부는 한 살 된 딸과 39.7㎡(전용면적) 규모의 아파트에 산다. 이 부부는 대출금 8000만원 상환 부담과 비좁은 집 때문에 둘째 아이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목표는 1억원대 전세 아파트.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전세와 매매 가격에 차이가 없어 서울 노원구의 39.7㎡(전용면적) 아파트를 1억1500만원에 샀다.

신혼부부 100명에게 물어보니
소득의 24% 원리금 상환에 써
8000만원 전세 대출 받을 29세
“내 집 마련, 몇 살에나 가능할지…”

집값의 70%가량인 8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나마 정부가 무주택자에게 지원하는 생애 최초 구입자금 대출(디딤돌 대출)이어서 이자가 쌌다. 그래도 원금과 이자로 월 75만~85만원을 냈다. 남편 월급(300만~400만원)의 20% 이상을 대출금 상환에 썼다.

그러던 중 지난해 3월 딸이 태어나면서 양육비가 들자 이자만 내는 방식으로 바꿨다. 박씨는 “둘째를 낳고 싶지만 대출금이 부담스럽고 아이 둘을 키우기에는 집이 좁아 당장은 둘째 출산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지가 결혼 5년 미만의 신혼부부 100명을 설문조사(47명은 심층 인터뷰) 했더니 상당수가 집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을뿐더러 결혼 후 대출금 상환에 짓눌려 아이를 낳을 엄두를 못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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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가운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사람은 20명이다. 이들은 월평균 128만원을 빚 갚는 데 쓴다. 가구 소득의 24.2%다.

 전셋값은 매년 급등해 지난 3년간 25.2%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39세 이하 2인 이상 가구의 소득은 5.9% 느는 데 그쳤다.

소득과 집값이 점점 멀어지면서 신혼부부의 좌절감이 커진다. 이들은 ‘전셋값 급등(지난 3년 25%)·월세 전환 증가→대출금 상승·주택난 심화→출산여건 악화’란 악순환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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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원 손정빈(29·경기도 용인시)씨는 결혼을 석 달 앞둔 예비 신랑이다. 직장 근처인 경기도 수원시에서 1억원(최대 1억2000만원) 정도로 빌라 전세를 알아보고 있다. 이 중 8000만원은 대출을 받아야 한다.

손씨는 “돈을 모아서 신혼집을 마련하려면 몇 살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나중에 아파트로 이사 가면 자녀 계획을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목돈이 없으면 전세는 꿈도 못 꾼다.

회사원 유병진(30·경기도 의정부시)씨는 “사회생활 3년 차다. 웬만한 월급으로 전셋값을 마련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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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반(半)전세를 선택하자니 월세가 부담스럽다. 엔지니어 김형진(31)씨는 지난해 11월까지 전남 목포에서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아파트에 살다 최근 어렵게 집을 샀다.

김씨는 “보증금이 낮은 아파트로 갈수록 더 많은 월세를 요구하기 때문에 혼자 벌어서 높은 월세를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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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월세 부담을 낮추려 낡은 아파트를 찾지만 그것도 버겁긴 마찬가지다. 회사원 문기남(25·여·경남 창원시)씨는 재개발을 앞둔 낡은 아파트(59㎡)인데도 전셋값 9000만원이 들었다. 그래도 새 아파트보다 50~60%나 싸다.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5000만원을 빚졌다.

문씨는 “이자(월 13만원)만 내다 돈을 모아서 2년 안에 대출금을 갚으려 한다. 그때까지 안 쓰고 안 먹으며 지낸다”며 “애 가질 생각을 전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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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김윤지(26·여·인천시 계양구)씨는 “남편이 교회에서 일을 한다. 직장에서 4대 보험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집을 구할 때 대출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선 출산계획이 헝클어지기 일쑤다. 회사원 정모(32·서울 광진구)씨는 지난해 5월 결혼하면서 전세 1억50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을 얻었다. 이 중 7000만원을 대출받았고 매달 98만원을 대출금 상환에 지출한다. 월 소득 250만원의 39.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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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외벌이로 주거비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으니 자녀 계획(2명)을 미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이에스더·김민상·서유진·황수연· 정종훈·노진호 기자, 김준승(동국대 신문방송4)·서혜미(세명대 저널리즘2) 인턴기자 ssshin@joongang.co.kr
공동 기획=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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