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체험평가단이 참여한 ‘디자인으로 쓴 시’ 알레산드로 멘디니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의자·주전자도 예술 작품 될 수 있대요

의자·전등·꽃병…. 일상 속에서 평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입니다. 의자는 사람이 앉아 편히 쉬게 하도록 돕습니다. 전등은 어두운 실내를 밝히고, 꽃병은 예쁜 꽃을 꽂아 놓는 것으로 충분히 그 기능을 합니다. 각자 고마운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매일 보는 평범한 물건들이라 큰 감동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상적인 것들이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삶에 특별한 감동을 줄 수 없을까?”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알레산드로 멘디니입니다.

그의 미적 감각과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삶에 감동을 줄 디자인의 세계를 소중 체험평가단이 만나봤습니다.

체험평가단이 참여한 ‘디자인으로 쓴 시’ 알레산드로 멘디니전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그의 이름을 걸고 열리는 전시입니다. 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지난 40여 년간의 디자인 세계를 살펴볼 수 있죠. 대표작은 물론이고, 한국에서의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멘디니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내부 구조를 설계하고 작품을 배치하는데 공을 들였다고 하니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기도 해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장난감을 연상케 하는 형태와 빨강·파랑·노랑과 같은 색깔이 가득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빨리 발걸음을 옮기고 싶겠지만 그전에 입구 오른쪽 벽을 잘 살펴보세요. 멘디니가 직접 남긴 표시가 있거든요.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해 놓은 것 같은 사인은 멘디니 본인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느낀 감격을 그림으로 남긴 메시지입니다. 아이의 낙서 같은 그림이 디자이너 작품이라니, 체험평가단은 물론이고 다른 관람객들도 무척 신기해 합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디자인의 세계에 입장하는 사람들을 멘디니가 장난스럽게 반겨주는 거죠.

사람들과 편하고 즐겁게 소통하기를 시도하는 멘디니의 배려는 전시 내내 계속됩니다. 전시장은 특별한 곳을 제외하고는 가이드라인이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덕분에 관람객이 자유롭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죠. 디자인은 체험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겁니다. 체험평가단 역시 작품을 만지고 앉아 보면서 즐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디자인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을 멘디니는 분명 알고 있나 봅니다.

기사 이미지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주방 도구들로 만든 ‘지오스트리나’. 알록달록한 장난감 회전목마 같은 모습으로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입구에서 몇 발자국 걸어가면 전시장에서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인 ‘지오스트리나’가 보입니다. 그 주변에는 유독 어린 학생들이 많아요. 소중 체험평가단 친구들도 가까이 다가가 작은 주전자나 냄비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작품 전체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죠. 놀이동산의 회전목마를 축소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주방용품 회사인 알레시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실제 판매되는 주방용품과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활용해 회전목마처럼 만들었죠. 박선영 전시해설사는 “멘디니는 어려서부터 동화나 만화를 좋아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멘디니의 동심에 대한 관심은 성장한 후에도 여전해 여러 작품에 발현됐다”며 “알록달록한 색의 물건들이 놀이기구처럼 움직이는 ‘지오스트리나’는 어른들의 동심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사 이미지

나무 캐비닛을 다양한 무늬와 여러 색으로 꾸며 기능성과 디자인을 동시에 갖춘 작품 ‘클라라벨라’.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계단 위에 의자 하나가 불타고 있는 모습의 사진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제목은 ‘저 위’(Up there, 1974)로, 멘디니가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담겨 있어요. 과거에 장식은 계급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확대되면서 단조로운 장식에 같은 기능을 가진 물품이 대량생산됐죠. 이때 물건은 기능·생산성·판매를 기준으로 평가받았어요. 멘디니는 기능주의와 상업주의 디자인에 반대했습니다. 기능만 강조되는 물건으로는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는 기능주의를 상징하는 의자를 불태움으로써 기능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어요. 작품 ‘저 위’ 옆에 있는 알록달록한 색의 커피 메이커인 ‘진부한 오브제: 모카’(Banal Objects: moka, 1980)도 기능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에스프레소를 뽑는 작은 주전자는 모든 이탈리아 가정에 하나쯤 있는 물건이죠. 멘디니는 평범한 주전자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혔습니다. 몇 가지 장식적인 요소를 더해주는 것만으로 평범한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눈에 띄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 겁니다.

프루스트 의자 통해 만나는 리디자인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작품에는 ‘리디자인(Re-Design)’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디자인도 어려운데 리디자인은 또 뭐냐고요? 그의 작품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이게 리디자인이구나!”라고 단번에 이해하게 될 거예요. 가장 유명한 리디자인 작품은 ‘프루스트 의자’입니다. 그는 18세기풍의 엔티크 소파를 구입해 수많은 색깔의 점을 찍었습니다. 루이15세 양식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의자는 수많은 색의 점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탄생합니다. 바로 ‘리디자인’입니다. 옛 것에 색을 입히거나 재료를 달리해 새롭게 만드는 겁니다. 수많은 점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어린 시절 기억의 파편을 모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의 소설이거든요. 전시는 ‘108 번뇌’라는 제목의 고려청자로 만든 프루스트 의자와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크기에 수많은 점을 찍은 프루스트 의자, 한국 전시를 위해 한국 디자이너와 조각보를 엮어서 만든 프루스트 의자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사 이미지

고전적 형태에 아름다운 색채의 점묘 장식이 된 ‘프루스트 의자’ 옆에 선 체험평가단.

안타까운 소식도 있습니다. 조각보를 엮어 만든 프루스트 의자 하나가 서울 전시 도중 훼손됐다는 겁니다. 전시 초반에는 누구나 프루스트 의자에 자유롭게 앉아볼 수 있었지만 훼손 사건 이후로는 눈으로만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멘니디는 “설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대로 두어도 좋다”고 말했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 앞에서 작품이 손상된 사건은 부끄러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체험평가단 친구들도 눈으로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죠.

기사 이미지

말뚝 목재를 재활용한 벤치 ‘유니콘’은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앉아 볼 수 있다.

멘디니는 전시의 마지막을 성스럽고 영적인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이탈리아의 성당을 모티브로 한 마지막 작품 ‘작은 성당’은 실제로 두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에는 이마에 스왈로브스키 크리스탈이 박혀있는 고대의 얼굴 조형물이 있어요. 불교에서 이마의 보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비춰주는 역할을 하죠. 철학·문학·역사·미술·문화를 아우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멘디니의 디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기사 이미지

작품 ‘케이크 베스킨 라빈스’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모형에 멘디니만의 디자인을 입혔다.

멘디니는 시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디자인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기능성과 상업성에 가려졌던 디자인의 가치와 감수성을 우리 모두에게 소개해주었죠. 디자인이 어렵다고 생각했다면 이제 시를 읽고 느끼듯 디자인을 보고 느껴보세요. 평범한 것들로 가득한 일상에서 디자인이 주는 특별한 감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중 체험평가단 후기

기사 이미지

체험평가단으로 참여한 정여진(왼쪽)과 신소라 독자.

정여진(경기도 성남여중 3) 독자 ★★★★★
“‘시를 디자인으로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작은 호기심을 가지고 ‘알레산드로 멘디니전’을 관람했다. 그의 작품을 시각·청각·촉각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멘디니의 감성이 녹아있는 작품을 통해 개인주의적이고 무관심하게 변해가는 우리의 일상을 디자인으로 따뜻하게 물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를 보고 나니 낯설고 어색했던 알레산드로 멘디니라는 이름이 이제는 색다른 경험과 성찰, 그리고 사고 전환의 필요성을 불어 넣어준 고마운 인물로 마음에 와 닿는다.

신소라(경기도 성남여중 3) 독자 ★★★★★
“처음 알레산드로 멘디니 전시회를 알게 됐을 때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회를 가기 전에 멘디니가 어떤 작품들을 디자인했는지 찾아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어려운 작품들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디자인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의자에 앉아 볼 수도 있고 작품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점이 정말 좋았다. 멘디니 전시회는 누구나 재미있고 귀여운 작품과 소통할 수 있어 가볍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글=권소진 인턴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동행 취재=신소라·정여진(경기도 성남여중 3) 독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