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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이 폭력성을 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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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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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포항에서·논설위원

공권력 집행이 폭력성을 띠면서 장기화되면 시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지난 한 해 포스코 수사로 몸살을 앓았던 포항 현지를 찾았다. 포항은 지역경제의 80% 가까이를 철강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포스코와 연매출 50억원 이상인 58개의 외주 파트너사, 이들과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등에 고용된 임직원 수는 3만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포항 인구수가 53만여 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포스코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런 포항이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가수 최백호의 노래를 빌려 비유하자면 ‘거친 바다를 달리던 영일만 친구들’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절규하는 듯했다. 시청 관계자와 정치권 및 경제계 인사들, 시민들은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8개월에 걸친 수사를 끝냈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의 태도는 달랐다. 트라우마 속에 ‘몸조심’ ‘입조심’을 할 수밖에 없는 듯했다. 현재도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에 대한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포스코 협력업체 대부분이 언제 수사 대상으로 바뀔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지역경제가 좋아질 리 있겠나.”

 검찰 조사를 받았던 한 업체 대표의 증언.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건 조사를 받았다. 언론에 보도되는 바람에 일 년 가까이 구설에 시달렸는데도 사건은 종결되지 않고 있다. 이러고도 기업을 하란 말이냐.”

 포항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 1분기 포항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기준치 100)는 51로 크게 낮아졌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절반 수준밖에 안 돼 침체국면이 지속될 거란 얘기다. 포항상공회의소와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들은 “철강산업 자체가 하강 곡선을 긋고 있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찰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지역경제는 쑥대밭이 됐다”고 주장했다. 포스코-외주 파트너사-용역업체-서비스산업으로 이어지는 포항의 실물경제 구조에 공권력이 정치하지 못하게 개입하면서 서민들 삶의 질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용역업체들은 잔뜩 움츠러든 포스코가 경비 절감을 요구하면서 3년간 10%의 매출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받는 당사자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현장을 확인하고 살펴봐야 한다”는 김수남 검찰총장의 발언이 아쉽게 들리는 것이다.

 포항의 중심지인 옛 시청 청사 부근의 업소들과 운수업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영업이 반 토막 나면서 부동산업체에는 가게 임대를 매물로 내놓는 건수가 늘고 있다. 많은 외지인이 포항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공권력에 대한 냉소는 골이 깊어진 경제난만큼 튀어 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도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관계자들이 전하는 검찰의 조사 행태를 한번 보자.

 -한나라당 경북도당 간부로 있으면서 당시 위원장이었던 이상득 전 의원에게 돈을 준 적 있죠.

 “없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서 이권사업에 개입했잖아.

 “제가 간부로 있을 때는 최경환 의원이 위원장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식으로 소환을 했다는 의미다. 어떤 인사는 17차례나 서울 검찰청에 불려 다니면서 조사를 받고 또 받았다고 한다.

 정상적 법치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다는 명분 속에 행사되는 공권력을 약탈적인 집행으로 인식하는 이는 포항 시민들만은 아닐 것이다. 포항은 영일만의 거친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오늘의 영광을 만든 산업화의 상징이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랑스러운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 포항이 배려와 절제를 갖추지 못한 공권력 때문에 추락하고 있다. KTX 포항역 대합실에는 온기가 없었다.

박재현 포항에서·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