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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핵 단추 누가 뺏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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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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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담화는 나의 의식을 멕시코만에서 사투(死鬪)하는 어부의 세계로 이끌었다. 대통령은 우리가 안보와 경제 양쪽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작품)는 멕시코만에서 길이 5.5m, 700㎏짜리 청새치와 싸우는 노인의 상황을 적었다. “지금은 혼자다. 육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까지 본 중에서 가장 크고 지금껏 들어본 것보다 더 큰 고기와 꼼짝없이 맞붙어 있다.” 노인은 운명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김정은의 수소탄 실험 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운명적 순간에 우리를 위해 나서줄 나라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도둑이 지나간 골목길을 한 바퀴 돌아주는 순찰차처럼 B-52를 한반도 상공에 띄웠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미군의 위용은 3년 전 북한의 핵실험 때도 봤던 익숙한 장면이다. 김정은은 미군의 순찰차가 지나가고 더 위력적인 수소탄을 들고 나타났다. 결정적 순간에 한국에서 얼굴을 돌리는 중국의 이중적 모습도 변하지 않았다. 국가주석은 한국 대통령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거는 전화조차 받지 않고 있다. 김정은의 목줄을 죌 능력이 있는 중국이 오히려 눈치를 보고 있는 건 미국과의 대결 같은 최종적 순간에 사냥개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의표를 찌르고 상황을 흔들어 주도권을 쥔다는 점에서 보면 김정은은 미국과 중국을 가지고 놀고 있다. 3년 전 같으면 대북 공동 비난이 나와야 할 시점에 양국이 서로 김정은 부실관리의 책임을 물으며 삿대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제야 문득 북한과의 핵 게임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한국이 수십 년간 쌓아왔던 자유와 민주, 경제와 번영을 지켜줄 구원자는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김정은의 핵 단추를 뺏을 사람은 국제사회가 아니라 한국인이다. 멕시코만의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하진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cannot be defeated).”

 괴물과 인간의 싸움에서 노인은 파괴되지도, 패배하지도 않았다. 패배하지 않겠다는 정신이 육체의 파괴를 막았다. 핵보다 무서운 게 사람의 정신이다. 핵무기는 그 자체로 금속 덩어리다. 문제는 핵무기가 아니라 핵 단추를 누르는 인간의 광기다. 광기는 의지와 눈빛, 정신으로 제압해야 한다. 한국인의 수소탄 대책은 김정은의 살상 의지를 무력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한·중 우호에 호소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돈줄과 원유 공급을 끊어 달라는 요청일 것이다. 그런데 돈과 원유가 중단되면 김정은의 핵 집착이 소멸할까. 그렇지 않다. 핵에 집착하는 김정은 문제는 박 대통령의 다른 발언에 답이 있다. “전체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진실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이라고 했다. 반경 수㎞ 내 20만 명의 살상력을 갖는 수소폭탄 대책이 기껏 야간에 20㎞ 퍼져나가는 기계식 확성기라니.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성기는 낡은 레코드가 아니다. 전체주의라는 괴물에 홀로 맞서는 한국인의 생존 의지이자 신무기다. 확성기 말고도 폐쇄된 공간에 열린 사회의 공기를 주입하는 환기구들을 무수히 뚫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세상은 도와달라고 징징대는 사람보다 생존 의지를 드러낸 강인한 사람을 돕기 마련이다. 핵을 막을 핵이 없다? 그러면 진실이 핵을 대치하게 하라. ‘김정은의 세뇌와 폭력과 공포 속에 북한 주민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진실을 김정은 왕국에 퍼뜨리자. 휴전선엔 북한에서 가장 활동력 있고 감수성 풍부한 17세에서 27세까지 40만 명의 인민군이 배치돼 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매년 배출되는 4만 명의 제대 군인이 한 번 듣고 두 번 들은 진실을 민간으로 퍼뜨리는 전파자가 될 것이다. 김정은의 핵 집착은 왕국의 정신세계에 불신과 균열이 번져 나간다는 두려움이 그의 머릿속에 스며들 때 무너질 것이다.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