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에밋, KCC 명가재건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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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L

'매직 에밋'이라 부르고 싶다."

김영기(80) 프로농구연맹(KBL) 총재가 최근 그의 플레이를 두고 한 말이다. 김 총재가 지칭한 주인공은 프로농구 전주 KCC의 외국인 선수 안드레 에밋(34·미국)이다.

김 총재는 "국내 프로농구에 미국프로농구(NBA) 수퍼스타 매직 존슨(57·미국)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가 나타났다. 본명이 어빙 존슨인 그는 마술 같은 플레이를 펼쳐 '매직(Magic) 존슨'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안드레 에밋에게도 '매직 에밋'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매직 존슨은 1980년대 NBA에서 LA레이커스의 5회 우승을 이끌었다. 농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극찬을 받았다. 매직 존슨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에밋은 한국무대에서 '코트 위의 마법사' 같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KBL은 올 시즌부터 신장 1m93cm을 기준으로 장신선수 1명과 단신 선수 1명을 뽑도록 규정을 바꿨다. 추승균(42) KCC 감독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키 1m91cm의 에밋을 지명했다.

10개 구단 감독 중 유일하게 1라운드에서 단신 선수를 택했다. 이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원래 포지션은 가드지만 국내에선 포워드로 뛰고 있는 에밋은 올 시즌 40경기에서 평균 26분53초를 뛰며 23.5점, 6.3리바운드, 2.6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평균 득점은 전체 3위, 1분당 득점은 전체 1위다.

묘기에 가까운 예측불허의 슛이 그의 장기다. 질풍같은 드리블에 이은 골밑슛, 몸을 뒤로 젖히며 던지는 페이드어웨이슛, 볼을 높이 올려 쏘는 플로터슛 등 다양한 공격을 펼치고 있다.

'매직' 에밋은 승부처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KCC 팬들은 "에밋이 공을 잡으면 득점을 올릴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우리에겐 '에밋 타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KGC인삼공사와의 경기가 대표적이다.

KCC는 종료 30초 전까지 5점 차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에밋이 막판 4점을 뽑아내며 대역전극을 이끌었다. 에밋은 지난해 12월20일 서울 SK전에서는 4쿼터에만 홀로 17점을 몰아쳤다.

에밋은 올 시즌 초반 또다른 외국인 선수인 리카르도 포웰(1m96cm)과 활동반경이 겹쳤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트레이드로 포웰이 전자랜드로 떠나고 허버트 힐(2m3cm)이 가세하면서 더욱 빨라졌다.

에밋은 최근 10경기에서 평균 29.6점을 넣었다. 2m21cm 장신 센터 하승진(31)과 전태풍(36) 등도 함께 살아났다. 최근 10경기에서 8승을 챙긴 KCC는 3위(24승16패)를 달리면서 선두 울산 모비스를 3경기 차로 위협하고 있다.

이상민 상성 감독은 "에밋은 올 시즌 가장 막기 까다로운 선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추승균 KCC감독은 "40분 동안 풀타임을 뛰면 40점은 거뜬히 넣을 수 있는 선수다. 내가 선수 시절 우승을 함께 한 외국인 선수 조니 맥도웰, 찰스 민랜드보다 득점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또 "에밋은 상체 근육이 엄청나다. 탱크같은 몸놀림과 특유의 스텝으로 상대를 괴롭힌다"고 덧붙였다.

미국대학스포츠(NCAA) 1부리그 텍사스 공대 출신인 에밋은 대학 통산 2256점을 기록했다. 2004년엔 슬램덩크 대회에서 무서운 점프력으로 무려 6명을 뛰어넘은 뒤 덩크슛을 꽂아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NBA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5순위로 시애틀(현 호클라호마시티)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작은 키 탓에 한계에 부딪혔다. 멤피스와 뉴저지 소속으로 NBA에서 총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후 리투아니아, 필리핀 등 세계 각국을 떠돌았다.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에밋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에밋은 경기장 안에서는 '포커 페이스'다. KCC의 정철우 통역은 "에밋은 쉬는 날에도 개인훈련을 하는 성실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에밋은 "상대팀 감독님들이 날 인정해주셨다니 기쁘다. 총재님이 매직 존슨과 비교해줘 영광"이라고 말했다. 챔피언결정전 5회 우승을 차지했던 KCC는 최근 3년간 10위→7위→9위에 그쳤다. KCC는 올 시즌 에밋을 앞세워 명가의 재건을 꿈꾼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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