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입당한 고졸신화 "유리천장 깨며 무수히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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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12일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양향자 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로부터 입당원서를 받았다. 양 전 상무는 삼성전자 최초 고졸 여성 임원으로 2014년 승진했다. [강정현 기자]

전남 화순군 쌍봉리 산골 마을. 매일 왕복 8㎞ 산길을 걸어 중학교(화순 이양중)를 다녔다. 그 15세 소녀에게 병을 앓던 아버지는 “동생들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 길로 인문계 고등학교 원서를 버리고 광주여상에 입학했다. 고교 졸업 후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에 들어갔다.

정치 뛰어든 양향자 삼성 전 상무
반도체 설계보조원 28년 만에 임원
“출산이 출세 막는 현실 바꿀 것
광주·전남 출마할지는 당과 협의”

여상을 나온 그는 고작 설계를 담당하는 ‘연구보조원’이었다. 하지만 일에 매달렸다. 아이를 낳기 전날에도 일했다. 28년 뒤. 그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 개발실 상무가 됐다. 이 회사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이었다.

 12일 더불어민주당이 ‘영입7호’로 당 대표실 포토 라인에 세운 양향자(49) 전 삼성전자 상무 얘기다. 양 전 상무는 처음엔 웃으며 회견문을 읽었다. 그러다 조금씩 목소리가 떨리더니 “학벌과 여성, 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했다”는 문장을 읽은 뒤 돌아서 눈물을 닦았다.

 그는 “스펙은 결론이 아닌 자부심이어야 한다. 없는 길을 만들며 무수히 눈물을 삼켰던 주인공이 제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고는 “우리 사회가 직장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 말고는 없다. 여성의 출산이 출세를 막는 현실, 육아가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꿀 책임은 정치에 있다”고 말했다. 말하는 동안 두 번이나 뒤돌아 눈물을 흘렸다.

 양 전 상무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며칠 전 남편과 함께 문재인 대표를 만났고, 입당을 결정한 건 어제(11일)”라며 “처음 문 대표에게 ‘정치는 생각해본 적이 없고, 문 대표님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죄송하다’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에게 “솔직히 당에 대해서도, 대표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감정이 없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표는 “양 전 상무의 인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기업은 앞서가는데 정치는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든다”는 말로 설득했다고 한다.

 양 전 상무는 “문 대표가 호남에 대해 고민하더라. 내가 도움이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와 대화를 나눈 뒤 처음엔 정계 입문에 반대하던 남편도 돌아와 “도와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도 직장인인 남편과 함께 왔다. 입당식 전부터 그는 “인턴 사원들에게 100년을 함께하자고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의 의미를 묻자 “같이 일했던 친구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와 배신감을 느낄 것 같다. 더 잘해서 그 친구들이 정말 좋아하는 선배가 되겠다”고 답했다.

 문 대표는 이날 “가장 자랑스럽고 의미 있는 영입”이라며 “모든 월급쟁이와 직장맘의 롤모델로 청년과 여성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의 대기업 임원 영입은 이례적이다. 측근들은 “삼성전자 임원을 영입한 건 문 대표의 의지였다”고 전했다. 지역구 출마 문제와 관련해 양 전 상무는 “제가 태어난 전남과 광주 시민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당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물갈이’ 평가지 밀봉=더민주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위원장 조은)는 이날 ‘현역 의원 20% 물갈이’를 위한 평가를 마무리했다. 당초 127명의 소속 의원 중 20%를 공천 배제할 계획이었지만 이미 12명이 탈당하고 3명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실제 컷오프 대상이 줄어들고 있다. 평가 결과는 금고에 밀봉된다. 문 대표는 오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글=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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