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생존졸업생 "먼저 졸업해 미안하다. (숨진)친구야, 잊지 않을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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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에서 생존한)선배님들의 웃음은 곧 (희생된)친구분들의 웃음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졸업과 함께 또 하나의 새로운 막이 열리더라도 드넓은 세상에서 (선배님) 친구분들의 웃음을 지키고 당당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재학생 대표 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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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세월호 사건이라는 겨울도 찾아왔지요.(…) 아마 모두에게 너무 길고 힘겨운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학창시절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졸업생 대표 답사)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강당. 재학생 대표 A군(18)이 송사를 읽자, 졸업생 대표 B양(19)이 담담하게 답사를 읽어 내려갔다. 강당 안을 가득 메운 400여명의 참석자들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날 졸업식 현장에 있던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엄숙하고 담담한 분위기에서 졸업식이 치러졌다. 일부는 눈물을 훔쳤지만 오열하진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은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의 졸업식이 이날 오전 있었다. 사고 생존학생 75명을 포함한 86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2013년 입학생 343명(남 183명, 여 160명)과 이날 졸업생을 비교하면 졸업생 비율은 불과 4명 중 1명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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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나머지 250명의 희생자들은 졸업 시점을 기약할 수 없는 '겨울방학'에 돌입했다. 학교 측은 숨진 학생 250명의 명예 졸업식을 이날 함께 치를 예정이었지만 유가족들이 "(팽목항에서) 실종자 9명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면 졸업식을 열겠다"고 반대해 무산됐다.

졸업식은 비공개로 치러졌다. 정문 앞에는 꽃다발을 파는 노점이 자리하고 주변에는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지만 교문은 굳게 닫혔다.

학교 관계자들은 빨간색 초청장을 확인한 뒤 쪽문을 통해 참가자들을 들여보냈다. 한 유가족이 "졸업식장에 왜 초청장이 필요하냐"고 항의했을 정도다. 단원고 관계자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니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착잡해 보였다. 한 생존학생의 숙부라는 양모(49)씨는 "조카가 정신력이 강한 편인데도 졸업식을 앞두고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며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만큼 밝은 인생을 살기 바란다"고 말했다.

4·16가족협의회는 생존 학생들의 졸업식과 별도로 이날 낮 12시부터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헌화식을 열었다. 유가족들은 '단원고 졸업생들에게 드리는 엄마·아빠들의 축시'를 발표했다.

"별이 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여러분(졸업생)에게 부담스러운 짐, 떨쳐내고 싶은 기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들을 대신해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할 필요 없다. 꿈꾸는 삶을 최선을 다해서 떳떳하게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졸업식장에서 직접 읽어주고 싶었는데 단원고에서 거부해 이 자리에서 읽게 됐다"며 "(희생된) 친구들이 건네는 축하인사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헌화식에는 이날 졸업한 일부 생존학생들도 찾아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생존학생은 "먼저 졸업해 미안하다. 친구들을 잊지 않을게"라고 짧게 말했다. 헌화식이 끝난 뒤 유가족들은 학생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4·16 기억 교실'을 방문해 책상에 국화꽃을 바쳤다. "아이들의 교실을 이대로 보전해 달라'는 의미였다.

앞서 도교육청은 기억교실을 대신할 별도 추모공간 부지를 학교 정문 건너에 마련하고 가족협의회를 설득하고 있다. 도교육청이 올해 단원고에 12개 학급(300명)의 신입생이 배정돼 기억 교실이 존치되면 교실 부족으로 수업 파행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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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박수철·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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