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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93> 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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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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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 기자

2살짜리 시리아 출신 남자 아이 칼리드(Khalid). 올해 첫 난민 희생자입니다. 칼리드는 지난 2일 그리스 아가토니시 섬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터키를 출발해 그리스로 향하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말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이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난민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는 ‘난민 위기’를 수치를 통해 점검했습니다.

작년 이주민·난민 100만명 유럽 땅 밟았다

아프리카·중동서 전쟁·박해 피해 건너가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해 1~12월 아프리카·중동에서 전쟁과 가난,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건너간 이주민과 난민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1일까지 집계된 숫자는 100만6551명. 2014년 28만여 명에 비해 1년 만에 4배 가까이로 급증한 것이다. IOM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난민 규모로는 최대 인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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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를 거쳐 육로로 그리스에 도착한 이가 3만4000명이고, 나머지 97만2551명이 지중해를 건너 왔다. 97% 이상이 위험을 무릎쓰고 바다를 건넌 것은 육로를 통과할 만한 돈이 없어서다. 목숨을 부지한 이들 중 81만8654명이 그리스에 도착했고, 15만200명이 이탈리아에 당도했다. 스페인(3592명), 몰타(105명)로 간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또 다시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등지로 길을 나섰다.

 국적은 시리아 > 아프가니스탄 > 이라크

유럽 땅을 밟은 100만여 명의 이주민·난민을 국적별로 보면 시리아 출신이 49%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이 21%, 이라크 출신이 8%로 이들 3개국이 전체의 4분의 3가량이었다. 이어 에리테리아(4%), 나이지리아(2%), 파키스탄(2%), 소말리아(2%) 등 순이었다. 대부분 내전 중이거나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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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난민이 가장 많은 이유는 5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내전 탓이 크다. 지난해까지 25만여 명이 숨졌고, 1100만여 명이 시리아를 떠났다. 시리아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반군에 맞서 싸울 병력이 부족하자 지난해부터 예비역까지 징병하기 시작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난민 행렬에 합류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이라크에서 활개친 것도 고향을 등지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유럽행 밀입국 경로 개척, 저렴해진 비용 등도 이주민·난민이 급증한 요인이라고 미국 CNN은 분석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유럽 밀입국 경로는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의 최남단 람페두사섬에 닿는 바닷길이었다. 그러나 시리아 난민이 늘면서 이들은 인접국 터키의 서쪽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까지 이동하는 경로를 이용했다. 이곳은 최단거리가 10㎞도 안 된다. 이 때문에 고무보트가 이용되면서 큰 배를 타야했던 때보다 비용이 크게 줄었다. CNN은 “이탈리아로 가는 큰 배를 타기 위해선 브로커 비용만 1인당 6000달러가 들지만 고무보트를 이용하면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유엔난민조약 가입한 유럽으로 몰려 

 사실 시리아 인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UAE) 등 걸프만 국가들이다. 육로로 갈 수 있는 인접국가들을 두고 굳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는 이유는 뭘까. 우선 1951년 제2차 세계대전 뒤 체결된 유엔 난민조약 영향이 크다. 유럽 대부분 국가를 포함해 142개국이 가입했다. 난민을 보호하고 본국으로 강제송환해선 안 된다. 반면 사우디, 쿠웨이트, UAE 등 걸프만 국가들은 난민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들 국가는 이를 내세워 난민을 도울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팔장만 끼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이 커지자 UN에 난민지원 명목으로 매년 수백만 달러를 내고 있다고 항변했다. 실제 UAE는 5억3000만 달러의 난민구호기금을 냈다. UAE 대학의 압둘 칼레크 압둘라 전 교수는 “걸프만 국가들은 종파 갈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다 보니 내부 갈등이 생길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난민 문제에 소극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또 난민들도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윤택한 곳에서 새 삶을 꾸리고 싶어해 유럽을 선호한다. 지난해 독일의 난민 수용 정책과 맞물려 가난을 벗으려는 경제적 이주민까지 유럽으로 밀려들었다. 실제 난민과 이주민 등이 섞여 쏟아지는 통에 현재 영미 언론도 이들에 대해 난민(refugee), 이주민(migrant), 망명 신청자(asylum seeker) 등으로 혼용해 쓰고 있다. 단순 이주민 자격으로 불법 입국한 이들에 대해선 강제 추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동 정세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난민인지, 이주민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는 실정이다.

지난해 94만명 유럽 각국에 망명 신청

 유럽에 도착한 이주민·난민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망명 신청이다. IOM이 지난해 10월 말까지 집계한 결과, 94만2400명이 유럽 각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이주민·난민들이 선호한 국가는 독일이었다. 가장 많은 31만5000명이 망명 신청지로 독일을 적었다. 헝가리에도 17만4055명이 몰렸다. 그 다음은 스웨덴, 이탈리아 등의 순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독일 망명 요청이 가장 많았지만, 해당 국가 거주민 대비 이주민·난민의 망명 요청 비율을 따져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인구수가 약 900만 명인 헝가리는 거주민 10만 명당 1450명의 난민이 망명 요청을 한 셈이 된다. 인구수 약 8000만 명인 독일은 거주민 10만 명당 323명이 망명 요청을 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해 독일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난민 유입에 관대한 태도를 취한 이유다. 반면 헝가리,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은 과도한 난민 유입을 감당키 어렵다고 판단한다.

2014년 EU 28개국서 18만여 명 망명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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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이 지난 5일 독일 바이에른주(州) 파사우에서 열차를 타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난민 수용에 관대한 독일에는 망명 신청을 하려는 수백명의 이주민·난민이 매일 몰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난민 범죄가 잇따르면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8일 “부적격 난민을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파사우 AP]

 18만4665명. 2014년 유럽연합(EU) 28개국이 이주민·난민의 망명 신청을 허가해 준 숫자다. 그 해 57만여 명이 망명 신청을 했지만 3분 1가량만 허가를 받았다. 이마저도 2014년 이전에 한 신청이 뒤늦게 받아들여진 것까지 포함된 수치다. 독일(4만7555명), 스웨덴(3만3025명), 프랑스(2만640명) 등의 순이었다. 이주민·난민을 쫓아내진 않았지만 주거·의료·구직 등에서 자국민과 동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진짜 ‘제 식구’로 받아들이는데는 인색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EU의 망명 허가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통상 망명 허가까지 1~2년 걸리고, 유럽 내 반(反) 이민정서가 퍼지면서 망명 허가 건수가 2014년에 비해 크게 늘어날 것 같진 않다고 영국 BBC는 전망했다.

 3735명은 지중해 건너다 사망 실종

 지난해 지중해에서 유럽으로 가다가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이주민·난민은 3735명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북아프리카-이탈리아 루트로 가다가 숨졌다. 이 때문에 이곳은 ‘죽음의 지중해 루트’란 이름이 붙었다. 터키-그리스 루트에선 700여 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9월 숨진 채 터키 해변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남자 아이 아일란 쿠르디(3)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반이민정서, EU 대통합 시험대

 EU는 쏟아지는 이주민·난민 때문에 1991년 출범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난 탓에 먹고살기 힘든데 난민들까지 받아줘야 하냐는 불만이 팽배하다. 반이민 정서가 커지면서 영국은 이민자 지원 혜택을 축소하는 쪽으로 EU 조약을 개정하지 않으면 EU에서 탈퇴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르면 6~7월 EU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지난해 파리 테러 용의자들이 난민으로 위장해 잠입했다는 이유로 다른 국가들도 이주민·난민에 등을 돌리는 추세다. 난민 추가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지역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유럽에 설치 중인 장벽만 10개다. 어렵사리 합의한 각국 난민 할당제도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결국 올해 난민 대응을 둘러싼 갈등이 EU 분열로까지 이어질지 분수령이 될거란 전망이 많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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