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2천여점포…연 매출액 5천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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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나라 전자기기의 메카 청계천이 첨단시대를 따라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50년대 광석라디오에서 오늘의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전자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청계천이다.
전자산업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이전에는 주연으로서, 전자제품을 수출전략품목으로 삼고 있는 오늘에는 조연으로서 청계천은 전자산업의 발전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청계천 전자시장이라하면 종로4가와 청계천4가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세운상가 및 동쪽의 아세아백화점, 서쪽의 광도백화점과 맞은편의 대림상가를 일컫는다. 여기에 밀집돼 있는 전자관계 점포 수는 줄잡아 2천여개. 이들 업체의 연간 매출액은 누구도 정확한 집계를 할 수 없으나 업계관계자는 5천억원 정도는 될 것으로 추정했다.
청계천전자시장의 역사는 6·25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장난 미군 통신기기 및 외제라디오 등이 이곳으로 주로 팔려 나와 전자시장으로서의 싹이 트는 계기가 됐다.
뜯겨진 통신기기·외제라디오 등이 부품으로 적게나마 거래되다가 50년대중반 청계천의 첫 히트상품인 로키트형 광석라디오가 출현, 오늘의 청계천의 초석이 됐다. 라디오 보급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던 당시 광석라디오는 방송수신기로서, 학생들의 간단한 공작품으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이어 60년대초 청계천 기술진이 만들어 낸 것이 5구슈퍼진공관 라디오였다. 주로 미군 통신기기에서 나온 중고진공관 5개를 엮어서 만들어 낸 것. 이 「5구슈퍼」가 광석라디오에 이어 청계천 제2의 히트상품이었다.
광운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청계천에 뛰어들어 20여년간 오디오제품을 제작·판매해 온 이규환씨(47·신흥전자대표)는 『트랜스는 코일을 감아서 만들고 기타 대부분의 부품은 미군 통신기기를 뜯어 만들었다.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 물건이 없어 못 판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그때를 회고했다.
「5구슈퍼」의 인기는 63년 외국에서 생산된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출현할 때까지 계속됐다. 트랜지스터의 출현은 67년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붐을 또 다시 청계천에 몰고 왔다.
이때 여기서 만들어진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전국으로 퍼져나가 상인들은 짭짤한 재미를 봤고, 많은 사람이 기업체를 차려 청계천을 떠났다.
아세아전자상가 새마을사업추진위원회 양호석회장(43·대한전자대표)은 『현재 구로공단 전자관계업체의 사장중에서 80%는 이곳 출신일 정도』라고 청계천의 역할을 강조했다.
70년대초 집적회로(IC) 시대를 맞아 대기업에서 본격적으로 음향기기 사업을 벌이기 전까지는 청계천에서 자체 개발한 전축·확성기 등으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그후 청계천은 수요자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청계천오디오가 대기업체의 제품에 밀려난 75년부터 어려움을 겪게됐다.
국내 전자부품의 70%이상을 공급해오던 아세아백화점의 경우 현재는 겨우 10%정도를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또 고객도 시골등지에 라디오 및 전축을 배급하는 중간상인들이 주종을 이뤘으나 이제는 전자분야에 호기심을 갖는 학생이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디오의 사양길을 걷던 이곳에 재기의 힘을 준 것이 퍼스컴의 등장이다.
78년부터 키트(Kit)형태로 팔기 시작한 애플퍼스컴 복제품이 시장에서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어 79년부터 완제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복제품은 미국에서 애플완제품을 들여다 청계천기술진이 똑같이 복제해낸 것으로 우리나라 퍼스컴보급을 선도했으며 아직도 청계천기술진의 실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83년에 절정을 이룬 퍼스컴붐은 세운상가 9층 거의 전부를 판매장 및 제작실·수리실로 바꿔놓았고 여기서 기술을 익힌 엔지니어들이 파스컴시장에 뛰어든 전자업체에 대거 스카웃 되어 가는 사태도 있었다.
지난해 9월에는 4층에 1백50개의 컴퓨터전문매장을 개설, 청계천퍼스컴의 신뢰도 및 질향상을 위해 종합적인 아프터서비스 및 고객관리를 해나가고 있다.
퍼스컴의 도입으로 80년대 초부터 광도백화점 일대의 산업용 특수기기 제작상들도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제어기기쪽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퍼스컴붐에 편승하지 못한 상점들은 학생용 전자키트제작에 눈을 돌려 학교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학생들의 과학교육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전자부품공급 및 오디오제품 제작공급이 주역할이었던 청계천도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첨단기술의 등장과 함께 업종과 업주가 분화돼가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은 각종 IC의 국내 유일한 공급처이기도 하며, 각종 퍼스컴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상품화 되지않은 산업용 특수기기는 거의 모든 것이 제작가능하며 외국에서 도입한 초정밀산업기기는 거의 이곳에서 고쳐지고 있다.
또 81년부터 블록격파를 첫 상품으로 시작된 오락기의 보급은 우리사회에 「뿅뿅문화」라는 새로운 사회양상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지금까지 대림상가 오락기제작업소에서 제작돼 팔려나간 오락기는 1백50가지에 70여만대나 된다. 그러나 청소년의 탈선문제로 당국의 전자오락실 단속이 강화되면서 현재는 거의 장사가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대신 오락기에 퍼스컴키보드를 부착, 게임도 하면서 퍼스컴조작요령도 익힐 수 있는 교육용오락기를 개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퍼스컴보급의 주도, 산업용 특수기기의 제작, 외국 전자제품의 모방·개량 등 업종의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청계천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상인에서 대학의 전자교육을 받은 고급두뇌로 뒤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후 머리하나만을 재산으로 좁은 사무실에서 자신의 창의력을 살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에서 공장의 자동제어시스팀개발 등에까지 나서고 있다. 소위 첨단모험산업에 뛰어든 「겁없는 젊은이들」이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곳에 기술자로 취직해 도제형식으로 10여년간 기술을 배워 전문기술을 확보한 소위 「청계천도사」들이 청계천이 일반기업과는 다른 특징을 이루게 하는 주역들이다.
청계천의 두뇌구성은 각양각색이다. 대학강사·대기업 임원·엔지니어 출신에서부터 청계천바닥에서 기술을 익힌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청계천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의한 신제품개발, 사업가로서의 성공, 기술자로서의 성취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의 장소」로 바뀌고 있다.
무수한 기술자의 소규모 집단으로 이뤄진 청계천은 그래서 기술개발의 기동성과 이로 인한 새 상품이 어느 곳보다도 급속히 이루어진다.
청계천 1세대컴퓨터인 8비트 애플복사판 퍼스컴에 이어 외국의 첨단퍼스컴과 똑같은 성능을 가진 청계천 2세대 16비트 퍼스컴제작에 성공, 곧 시장에 나올 예정이어서 또 한번의 퍼스컴 붐을 기대하고 있다. <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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