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신사의 나라 되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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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이 넘쳐나는 영국 사회를 되찾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사회적 존경 회복'을 집권 3기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10일 블레어 총리는 '존경 행동 계획(Respect Action Plan)'을 발표했다. 그는 "영국 사회에 만연한 '반(反)사회적 행동'을 뿌리뽑겠다"고 밝혔다. 자랑스러운 '신사의 나라'에서 부끄러운 '주정뱅이 나라''훌리건(축구장의 난동꾼)의 나라'로 전락한 영국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구상이다. 블레어는 "일부의 반사회적 행동이 다른 다수의 삶을 파괴하고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며 "법을 지키는 선량한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반사회적 행동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블레어가 정권의 숙제로 제기한 반사회적 행동(Anti-social Behaviour)은 영국의 새로운 고질병으로 불릴 정도로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금요일 밤의 폭음(Binge Drinking)과 훌리건이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 대도시 주변 슬럼의 경우 술 취한 젊은이들이 몰려다니며 패싸움까지 벌이는 바람에 나다니기가 무서울 정도다. 술 취한 젊은이들은 밤새 고성을 지르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심한 경우 폭죽을 밤새 쏴대 주민들이 잠을 설쳐야 한다. 혼자 사는 노인이 자신의 집에 침입해 밤낮으로 괴롭히는 악동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훌리건들은 경찰의 단속망을 피해 몰려다니며 기물을 파손하거나 상대방 응원단을 공격한다. 주요 해외경기가 있을 경우 경찰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훌리건의 출국을 막기도 한다.

블레어는 이같이 심각한 '존경심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히 강경한 행동계획을 내놓았다. 총리실 태스크포스 팀이 지난 1년간 준비해온 조치들이다. 일단 경찰.구청의 단속권한이 대폭 강화된다. 경찰은 반사회적 행동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불량 가구를 3개월간 강제퇴거시킬 수 있다. 구청은 문제 가족들에 지급해온 각종 사회복지 수당을 중단할 수 있다. 부모들에 대한 자녀교육 프로그램도 강화된다. 불량 청소년을 방치하는 부모는 벌금을 내야 하며 '자녀교육 잘하는 법'이란 교육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정부는 부모들을 가르칠 법률전문가.임상심리학자.사회복지사를 양성할 '국립 자녀교육 아카데미'를 설립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블레어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문제 청소년의 교화다. 처벌은 단기 처방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청소년의 심성을 순화하는 방법뿐이라는 인식에서다. 블레어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동시에 다른 시민들의 권리를 존중해 주는 성숙한 매너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 주는 것도 정부의 의무라는 것이다.

일부에선 블레어 정권이 개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내니(유모) 정권'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강제퇴거나 부모 교육 도입 등이 강압적이란 이유에서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는 "단기적인 처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당도 "장기 집권을 한 블레어 총리가 점점 더 비현실적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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