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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야당은 미 공화당을 반면교사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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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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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미국 공화당은 한국의 야당이 배울 게 많다. 따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그렇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지 7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미국에선 대선 불복이 존재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바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인데, 2008년 대선 때 등장했던 의혹을 지금도 꺼내드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음모론자를 ‘버서(birther)’라고 부른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7월 “오바마가 왜 (출생) 서류를 공개하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 출생증명서를 이미 공개했는데도 그렇다. 첫 흑인 대통령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보수 백인층의 심리를 교묘히 자극하는 발언이다. 지난 10월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 대선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는데 참 닮았다.

 2012년 9월 미국 외교의 참극이 벌어졌다. 리비아 벵가지의 영사관이 습격당해 주재 대사 등 4명이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당시 책임자가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이다. 공화당 강경파는 벵가지 특위를 주도해 지난 10월 의회 청문회를 열었다. 진상을 규명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선 당연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대선주자인 힐러리를 흠집 내겠다는 의도였다. 힐러리를 앉혀 놓고 11시간의 마라톤 청문회를 했는데 공화당 청문위원들은 고함만 지르다가 “재탕만 내놨다”(워싱턴포스트)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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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의 예산안을 막겠다며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을 강행했던 공화당은 처참하게 상처를 입었다. 여론은 등을 돌렸고 당 지지율은 추락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지난 18일 새해 예산안을 표결 처리해 줬는데 숙원 사업이던 원유 수출 금지를 해제시키는 대신 민주당이 요구한 재생에너지 세제 혜택 연장안을 허용하는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단, 시리아 난민 수용 축소 요구는 이번 예산엔 반영시키지 않았다. 이를 놓고 트럼프는 “셧다운을 피하려고 비겁하게 후퇴했다”며 “공화당이 수건을 던졌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강경파나 주자들이 보수 백인 유권자의 속내를 등에 업고 의혹을 제기하거나 극한 대결을 요구하는 배경엔 오바마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를 타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배제시켰다가 보수 진영의 반발을 샀다. 복음주의자들의 거부감이 여전한데도 성(性)소수자의 공직 임명을 자신의 업적으로 전면에 내세워 자극하고 있다. 한국에선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는데 미국에선 ‘제황적(emperor) 대통령’이다.

 오바마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건 공화당의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분노만 있을 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미국을 만들겠다는 건지 이제는 전 세계가 불안해한다. 한국 야당은 공화당에서 배울 게 많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