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진흙탕’ 벗은 무지개아파트 수주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황의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기사 이미지

황의영
중앙일보조인스랜드 기자

‘정치판처럼 선거 유세하느라 피 튀기겠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무지개아파트의 재건축 시공사를 뽑는 총회장으로 이동 중일 때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다. 강남권 ‘대어급’ 사업장인 데다 수주전 막판인 만큼 혼탁·과열 양상이 심할 것으로 봤다. 그동안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둘러싼 수주전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공사비만 수천억 원에 달하다 보니 업체들은 공사를 따내려 혈안이 됐다. 조합원의 표심을 잡기 위해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경쟁사를 대상으로 악의적인 흑색선전을 펼치기 일쑤였다. 올 상반기 시공사를 뽑은 서초구 S아파트 사례만 봐도 그렇다. 당시 시공사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은 금품 제공 등 의혹으로 경찰 수사까지 받았다. 총회장에 입장하는 주민에게 노골적으로 ‘한 표’를 부탁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업계에서조차 “정치권 선거와 복사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무지개아파트 수주전은 달랐다. 삼성물산과 GS건설이 수주경쟁을 벌인 20여 일 간 금품 제공 같은 ‘수주 관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구대환 조합장은 “돈이 오간 게 확인되면 입찰 자격을 박탈시키는 ‘원 아웃제’를 실시한 결과”라고 말했다. 업체들은 이에 동참해 평면설계 등 입찰조건만으로 승부했다. 실제 총회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길거리 유세’도 자취를 감췄다. 선물이나 돈을 받았다는 조합원의 무용담도 들을 수 없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건 시공사 선정이 끝나고 나서다. GS건설과의 대결에서 패한 삼성물산 임직원이 무지개아파트 앞에 도열해 조합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다. 개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던 전례에 비춰보면 성숙한 모습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경쟁사의 입찰조건을 서로 비방하는 모습은 수위만 낮아졌을 뿐 여전했다. 그럼에도 수주전 문화가 한 단계 개선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쪼록 이런 흐름이 건설업계 전반에 확산되길 기대한다.

황의영 중앙일보조인스랜드 기자 apex@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