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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트뤼도'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 발생은 전 세계 정치지도자들에게 중대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와의 연계 가능성을 우려하여 난민 수용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특히 공화당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아예 이슬람 출신들의 미국 입국을 불허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까지 내세웠다.


시리아 난민 3만명 입국 허용
"캐나다가 새로운 집" 약속
다양성 인정하는 리더십 기대

이런 와중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시리아 난민 3만 명의 입국을 허용하고,직접 이들의 입국을 환영하면서 캐나다가 그들에게 새로운 집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직후부터 캐나다 다민족 출신들을 내각 각료로 고루 기용하는 정치행보를 보였던 트뤼도 총리는 모국을 떠나 세계를 방황하는 난민을 수용한다는 적극적 결단을 내림으로써,국가가 무엇이고,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보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플라톤은 『공화국』을 통해 인간들이 개별적으로 살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른 재능과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공동체가 폴리스, 즉 국가라고 지적하였다. 트뤼도 총리는 다른 종교를 갖는 이민족일지라도 캐나다가 그들을 감싸안는 공동의 집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플라톤의 국가비전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모습이 트럼프가 주장하는 국가, 즉 같은 종교를 가진 동질적인 인간들에 의한 배타적인 결사체의 비전보다 훨씬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또 구성원들 사이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국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모름지기 정치가란 국가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종교나 의견이 항상 같을 리 없는 국민을 통합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 이러한 내적 결합을 바탕으로 비로소 정치 지도자는 국가 공동체가 직면한 내외의 도전들을 극복해 가는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20여 개 문명들의 흥망성쇠를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처럼, 이러한 창조적 소수의 지도자가 이끌어나가는 정치공동체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게 된다.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 국면이 전개되면서 민의의 심판을 받아보고자 하는 정치가 지망생들이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저마다 잠재적 경쟁자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국가공동체가 어떠한 비전을 가져야 하고, 우리가 직면한 내외의 도전 요인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의 방향을 보여주는 정치가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트뤼도처럼 생각과 입장이 다른 다양한 국민을 포용하려는 큰 그릇의 정치가들은 더욱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우리 국가에는 생각이 다른 국민을 적대시하고 배제하려는 정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통설적이지 않은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는 검찰의 기소 대상이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개별 이슈에 관한 소수 의견들의 표출은 허용되어야 하며,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비주류의 의견들도 수렴하여 국가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과의 통합도 추진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그런 장차의 큰 과제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 내의 동질적이지 않은 요소들에 대해서 배제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트뤼도 총리와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등장을 기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키워드
#트뤼도 #트럼프 #파리 테러 #시리아 난민 #토인비 #플라톤 #통합 #박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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