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존엄사법, 임시국회 열어 반드시 처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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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9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전날 이 법률만을 위해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었고 9일에도 그랬다. 오랜만에 국회가 제 역할을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가 바통을 이어받아 조속히 마무리를 짓길 기대한다.

국회 복지위 연명의료법 처리 환영
임종 환자 품위 있는 생애 마무리 길 열어
법사위·본회의에서 조속히 통과해야

 이 법률은 ‘웰다잉법’ ‘존엄사법’으로 불린다. 자연사법으로도 볼 수 있다. 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지금은 임종이 가까워오는데도 각종 현대 의료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중환자실의 차가운 조명 아래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한 해에 5만 명가량이 그렇게 최후를 맞는다. 한 해 사망자의 17%가량 된다.

 이런 비참한 상황이 생기게 된 배경은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의사 2명이 뇌를 다친 환자 부인의 요구에 따라 퇴원을 도왔다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았다. 이후 ‘방어 진료’가 횡행했다. 환자가 자기 목숨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자기 결정권은 온데간데 없다. 대법원의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존엄사 판결이 상황을 바꿔놨고 2013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존엄사 합법화’라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길게 보면 18년, 짧게는 2년여 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미국(76년)·대만(2000년), 영국·프랑스(2005년)에 비해 10~40년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첫 단추를 꿴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번 법률은 호스피스 인프라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말기 암 환자의 13%만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호스피스를 적극 알리고 양질의 호스피스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국회가 법안 처리를 서둘렀다면 내년 예산에 반영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시행 시기를 ‘공포 후 2년’으로 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2013년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법제화를 권고할 때 준비기간을 감안해 ‘2년 후 시행’을 권고했고 이미 2년이 흘렀는데도 이를 감안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임시국회에서 통과해도 2018년에서야 시행할 수 있다.

 정부의 할 일이 많다. 연명의료 설명에 필요한 건강보험 수가를 개발해야 한다. 사전의료의향서 서식 마련, 등록기관 지정, 국립연명의료관리기구 설립, 호스피스 확대 등이 차질 없이 뒤따라야 한다. 의사가 환자나 가족에게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 환자 진료에 쫓겨서다. 누군가 의사의 설명을 보조할 사람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 통과다. 웰다잉법은 여야, 좌우, 진보-보수 간에 이견이 없다. 이달 임시국회가 열리면 법사위-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한다. 노인의 92%가 연명의료를 반대하는 점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