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건설3社 부도 낸 이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전국적으로 주택 사업을 했던 대구 지역 건설업체 3인방의 운명이 갈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나란히 부도를 낸 청구.우방.보성 등은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청구.우방은 신규 주택분양을 통해 재기의 돌파구를 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반면 보성은 끝내 문을 닫게 됐다.

◇기지개 켜는 우방=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우방 본사는 최근 들어 활기를 찾았다. 부도 이후 3년 만에 처음 아파트를 분양하기 때문이다. 만촌동에 1백76가구를 짓는 '만촌3차 우방팔레스'이다. 이번 분양을 통해 롯데.대림.삼성.코오롱 등 대기업 계열 건설업체에 내줬던 지역 주택시장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방은 지난 1일 조직개편을 했다. 민간사업과 관급공사 수주를 위해 사업개발팀을 새로 만들었고, 관급공사 수주팀도 보강했다.

우방은 법정관리 이후 대구 대현지구, 김해 장유택지지구 등의 아파트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특히 대구.포항 등지에 보유 중인 땅에도 아파트를 짓기로 하는 등 자체 분양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엔 서울의 한강수계 하수관 정비공사를 따내는 등 건설 수주 규모가 점차 늘고 있다. 올 반기 실적은 매출 1천7백여억원에 2백억원대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1조3천2백억원이던 부채도 올 연말이면 5천5백억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김갑진 기획팀장은 "재개발이나 신규 아파트 공사 수주 물량이 많아 자금 사정도 크게 나아졌다"며 "올해 매출액 목표를 3천5백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임원 승진도 있었다. 법정관리 업체에선 이례적인 인사다. 회사 측은 "법원이 회생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며 반기고 있다.

◇회생 안간힘 쓰는 청구=법정관리 이후 건설한 아파트를 모두 분양했다. 지난달엔 울산시에 있는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그 자리에 5백여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공사를 따내는 등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빚이 9천억원 가까이 남아 있고, 금융권 대출이 쉽지 않아 신규사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포항.부산 등 다섯곳에 있는 아파트 용지에는 모두 근저당권이 설정돼 매각되면 아파트 시공권을 따내는 방법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청구는 지난 3월 1백70명이던 직원을 1백명으로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다.

청구 관계자는 " '청구'란 아파트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면 다른 기업이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법원과 채권단의 몫"이라고 말했다.

장수홍(61) 전 회장은 지난 6일 5년간 수감생활을 마치고 만기 출소했다. 1998년 업무상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었다. 장회장의 지분은 모두 소각돼 청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는 ㈜청구.청구산업개발.대구복합화물터미널.대구방송.블루힐백화점 등 15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한때 재계 37위의 그룹을 일궜다.

◇사라지는 보성=이제 아파트 단지에 붙은 이름에서나 보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중구 남산동의 본사 건물은 이미 경매로 넘어가 주인이 바뀌었다.

남구 대명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사무실에 보성의 파산 관재인 사무소가 자리잡고 있다. 두명의 파산 관재인과 직원 7명이 보성의 자산을 처분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보성'이란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창업자인 金상구(68) 전 회장은 지난 2월 지병으로 타계했다. 金씨는 1974년 삼보주택을 창립했고, 94년 사명을 ㈜보성으로 변경했다. 이후 계열사를 12개로 늘리는 경영수완을 보였다. 그러나 부도 후에 경영난이 지속되자 2000년 9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며 2001년 1월 직권으로 파산선고를 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