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리즈 3] "20년을 기다렸다" 수지 여사의 집사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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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양곤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선거에서 승리한 민족주의민족동맹(NLD) 당사를 3번 찾았다. 한번은 문 닫을 오후 5시쯤이었고, 다른 한번은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서, 마지막은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양곤에서 NLD 당사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선거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있었던 총선의 열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지난달 20일 처음 당사를 찾았을 때는 막 당사를 닫는 시간이었다. 미리 듣긴 했지만 깐도지 호수 근처의 NLD 당사는 외견상 참 초라했다. 10평도 채 안 되는 건물이었다. 당사에 있던 운영진은 다음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당사 옆으로 아웅산 수지 대표의 그래피티가 선명했다. 프랑스 취재진이 당사 옆 차고에 그려진 수지 여사와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그림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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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D 당사와 연결된 건물 앞으로 아웅산 수지 여사의 그래피티가 걸려 있다. 정원엽 기자]

NLD 당사 옆 집을 두리번거리자 당사 쪽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가 입었던 ‘Be the Reds’ 티셔츠를 입은 우 민 수(U myint Soe, 64)씨가 나왔다. 그는 마음껏 사진을 찍으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티셔츠에 대해 묻자 “NLD의 상징이 붉은 색이라서 입었다”고 했다. 집에 수지 여사 그림이 왜 이렇게 많은지 궁금하다고 하자 “내가 수지 여사의 집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20년 이상 수지 여사 집에서 일을 해왔고 식사 등을 돌봐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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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지 여사를 모셨다는 우 민 수씨. 정원엽 기자]

우 민 수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NLD 당사가 왜 이렇게 작은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수지 여사가 가택 연금을 당하고 NLD에 대한 정부의 공격이 시작됐었다”며 “당을 운영하기 위해 건물을 임대하려 해도 모두가 두려워하며 임대를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1996년경 우 흐툰 카잉 부부가 현 NLD 당사를 기부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절반 가량을 당사로 내준 것이다. 우 민 수는 “정부는 우 흐툰카잉을 감옥에 가뒀고 1년간 교도소에서 있다 결국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부인 다우 누도 6개월간 징역을 살았었고, 약 두 달 전쯤 사망했다고 했다. 그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수지 여사 얼굴이 찍힌 옷이나 프린트는 정부가 금지했었다"며 "지금은 건물에 저렇게 수지 여사 모습을 그려둬도 괜찮으니 얼마나 많이 바뀌었냐"며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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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완공 예정인 새 NLD 당사. 수지 여사 명의다. 정원엽 기자]

부부의 유지는 손자가 이어받았다. 손자는 지금 NLD 당사 옆에 건물 부지와 2층 집을 NLD에 기부했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수지 여사가 본인 이름으로 기부를 받아 6층 건물을 짓고 있으며 내년 1월이면 공사가 마무리 된다고 했다. 정권 교체와 함께 새 당사로의 이전이 이뤄지는 셈이다.

수지 여사 개인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치던 우 민 수는 “명상을 많이 하고 건강을 늘 챙기시는 분”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수지 여사가 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가끔 생선 지방 같은 음식을 건강을 위해 먹는다고 했다. 워낙 식사량이 적으신 분이라 종종 멀리까지 가서 생선을 구해오거나 오리 고기 등을 챙겨준다는 말도 했다. 수지 여사가 미얀마를 바꿀 것이라고 믿는지 물었다. 그는 “20년간 기다려왔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양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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