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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진타오號 출범 100일] 실용 개혁 '胡시대'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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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후진타오(胡錦濤)가 이끄는 '중국호'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지난 3월 1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全人大)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胡는 취임 1백일 동안 실리 위주의 개혁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11월 실질적 최고 지도자 자리인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胡는 12월 중국 공산당의 혁명기지인 허베이(河北)성 시바이포(西柏坡)에서 첫 정치일정을 시작했다. 이 지역은 공산당이 1949년 베이징(北京)을 점령하기 전까지 비밀사령부가 자리했던 곳으로 공산당의 혁명 열정이 숨쉬고 있는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胡는 이 자리에서 전국 공산당 주요 간부들을 향해 "끝까지 겸손하고 신중하며 교만하지 말라"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유훈을 강조했다.

탈(脫)권위주의 개혁=胡주석은 지난달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3백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면서 인민대회당과 공항에서 의례적으로 해온 출국 의전 행사를 생략했다. 중국 건국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신화통신은 "실용성과 효율성.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3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4월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SARS.사스)이 확산될 때는 돌연 베이징 시장 멍쉐눙(孟學農)과 위생부장 장원캉(張文康)을 경질했다. 이어 잠수함 361호의 승무원 전원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수뇌부 4명을 해임했다.

중국 관료계가 크게 술렁일 수밖에 없는 대형 사건이었다. 당.정.군의 고위인사가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해직당하지 않는 한 임기가 보장되는 '철 밥그릇' 전통이 깨졌기 때문이다.

중화권 매체들은 "중국에서 행정 책임을 묻는 문책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결국 거대 관료화된 중국 공산당의 내부 개혁으로 이어지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음달 1일 공산당 창당 82주년 행사에서 胡는 당 운영의 민주화 등 일련의 개혁 방침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상외교로 자신감 충전=이달 초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서방선진7개국+러시아)회담에서 胡주석은 세계 정상들과 만나 중국의 새 지도자로서 면모를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무대에서는 장쩌민(江澤民) 당 중앙군사위 주석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대내외의 우려도 거의 사라졌다. 최근에는 江주석이 결정권을 행사해온 대만 정책에 대해서도 발언권을 확대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胡주석이 사스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강화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용주의 정치철학=중화권 매체들은 후진타오의 정치적 행보를 '무실(務實).친민(親民).개혁(改革)'이라는 말로 집약한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형식적 보도 관행, 관료들의 사건 실체 은폐 등 무사 안일주의의 폐해를 '수술'하는 것은 실질 숭상의 신념에서 나왔다는 평이다.

또 사스 발생 기간 중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방문하면서 민심 아우르기에 나선 것은 국민의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친민'의 연장이라는 해석이다. 그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92년 胡를 정치국 상무위원이란 '미래 정치 스타'로 내세운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은 胡의 정체성을 이룬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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