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러시아 "터키 계획된 도발" 시리아에 지대공 미사일 배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기사 이미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회견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협력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AP=뉴시스]

24일 터키에 의한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세계는 다시 냉전 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반세기 만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에 의한 러시아 전폭기 격추로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는 경색됐다. 한때 이슬람국가(IS)에 맞선 연합전선 논의까지 나오던 서방과 러시아 간 기류도 얼어붙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터키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는 계획된 도발”이라고 규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터키 측 주도로 외무장관끼리 전화통화를 했지만 터키 측은 변명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이날 러시아는 최첨단 지대공 미사일 S-400을 시리아에 배치했다. 러시아 외무장관이 “터키와 전쟁할 뜻은 없다”며 수위 조절을 하긴 했어도 보복조치를 암시하는 행동을 한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리아의) 라타키아 기지로부터 600㎞ 반경에 고도 6000m까지 비행 중인 항공기를 공격할 수 있다”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전에 터키가 경고를 했는지에 대해 양측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구조된 러시아 부조종사 콘스탄틴 무라흐틴 대위는 25일 “터키 전투기로부터 아무런 사전 경고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터키 국방부가 24일“러시아 수호이(Su)-24 전폭기 두 대가 터키 영공에 침범해 두 대의 F-16s 전투기를 출격 시켰고 5분 동안 10차례 영공 침범 사실을 경고했으나 벗어나지 않아 한 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한 것과는 배치된다. 미국 국방부의 스팁 워런 대변인은 “(10차례 사전 경고를 했다는 터키 측 주장은) 사실”이라고 했다. 터키는 유엔에 보낸 서한에서 “두 전폭기가 터키 영공을 17초간 침범했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4일 백악관에서 열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러시아 전폭기가 터키 및 여러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시리아)온건 반군을 추격하다가 터키 국경을 가깝게 나는 바람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며 “만일 러시아가 그 에너지를 IS에 쏟는다면 그런 갈등이나 실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서방으로선 곤혹스러운 점도 있다. 침범 시간이 짧은 데다(17초) 러시아 전폭기가 공격받은 곳이 시리아 영공이란 분석 결과가 나와서다. 익명의 미 정부 당국자는“격추된 전폭기의 열 신호를 분석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나토의 한 관리는 “F-16s가 그 장소에 있을 정도로 아주 운이 좋았거나,아니면 (러시아 전폭기의) 영공 침범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터키의‘의도된’ 공격이란 얘기다.

 러시아는 전폭기 격추 이후 벌어진 일에도 분노하고 있다. 격추된 Su-24 전폭기에서 비상 탈출한 조종사 두 명 중 한 명이 24일 시리아의 투르크멘 반군에 의해 사살됐다. 다른 조종사는 야간 작전을 통해 구조했다. 터키가 지원하는 투르크멘 반군은 또 이날 탈출한 조종사를 구조하려던 러시아 헬기도 격추시켰다. 시리아 반정부 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반군은 미국이 제공한 BGM-71 토(TOW) 대전차 미사일로 러시아 헬기를 쏴 비상 착륙시킨 뒤 두 번째 미사일을 발사해 헬기를 폭파시켰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해병 한 명이 숨졌고 나머지 아홉 명은 구조됐다고 러시아군이 밝혔다.

 시리아를 놓고 터키와 러시아 간의 이해 관계는 엇갈린다.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반면 터키는 알아사드가 퇴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군이 IS 공습을 위해 터키 내 공군 기지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지만 정작 IS 격퇴 작전에는 소극적이다. 러시아는 “터키가 IS로부터 기름을 사들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터키는 미국 등이 지원하는 쿠르드족도 공격해왔다. 이 때문에 서방의 한 관료는 “터키는 이름만 나토회원국”이라고 했다.

워싱턴·런던=김현기·고정애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