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찬송가 함께 부르자” 몇주 전 가족들과 마지막 만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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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고문(왼쪽부터)이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矜恤) 어찌 의심하리요~.”

가족·참모들이 전한 최근 모습
가을 들어오며 말하기도 불편
최측근들 문병도 부담스러워해

 몇 주일 전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찬송가를 함께 불렀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찬송가 제목은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이었다. YS와의 마지막 만찬임을 직감한 가족들은 그가 직접 부른 찬송가를 녹음했다고 한다.

 교회(역삼동 충현교회) 장로였던 YS는 성경 ‘이사야서’ 41장 10절도 읊었다고 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는 내용이었다.

 22일 빈소에서 만난 YS의 둘째 동생 김호아(81)씨는 “이사야서는 오빠가 살아생전에 좋아해 외우곤 했던 문구였고, 직접 부른 노래 역시 즐겨 부르던 찬송가였다. 언니(손명순 여사)가 오빠가 아프면서부터 말을 잘 안 하고 우울해한다. 지금도 말이 별로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YS가 서거한 22일은 공교롭게도 18년 전인 1997년 특별담화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사실을 알렸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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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현철씨가 지난해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YS의 모습. 현철씨는 당시 “퇴원을 앞둔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이라고 소개했다. [사진 김현철 페이스북, 정몽준 블로그]

 YS는 가을이 되면서부터 말하는데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몸이 불편해지자 최측근 인사들의 문병도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를 평생 보좌해온 김기수 수행실장은 “직접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워낙 자존심이 세신 분이니까…”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단답형 대답이야 병원에 들어오셔서도 했고, 말씀도 잘 들으시고, 사람들도 다 알아보고 했다. 2~3일 사이에 갑자기 힘들어하셨다. 갑자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YS의 영원한 참모로 불리는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이달 초 상도동 자택에서 YS를 만났다고 했다. 22일 새벽 2시 빈소를 찾은 이 전 수석은 심경을 묻는 질문에 “말로 할 수 없이 참담하다. 한 시대를 정리하신 분 아니냐”며 “정치적으론 여야 정권교체의 기반을 만들었고, 경제사회적으론 세계화 시대와 정보화 시대의 기초를 다진 분”이라고 회고했다. 76세의 나이에도 “나는 평생 비서만 한 사람이라서 저 안에 들어갈 수 없다”며 영정이 있는 빈소 안에 들어가지 않은 채 밖에서 손님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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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8일 서울 상도동에선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 기공식이 열렸다(오른쪽). 이 도서관 개관이 YS의 마지막 목표였다. [사진 김현철 페이스북, 정몽준 블로그]

 YS는 마지막까지도 재활에 매진했다. 그의 소원이었던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 참석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차남 현철씨에게는 “내가 빨리 털고 일어나야 도서관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택에서 불과 530m 떨어진 도서관 개관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현철씨는 최근까지 본지에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메시지를 내기 위해 몸을 만들고 계신다”고 전했다.

 당초 2013년 6월 예정이던 도서관 개관은 내년 초까지 미뤄졌다. 국고 지원 이외의 비용을 모금을 통해 충당하면서다. 김정열 김영삼민주센터 사무국장은 “국고가 들어간 도서관을 제대로 못 지으면 국민에게 결례가 된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준공에 시간이 걸렸다. 최근 사무국 일부도 새 건물로 이사를 가고 이제 운영주체만 확정 지으면 되는데…”라며 애석해했다.

강태화·채윤경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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