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공급 과잉 ‘먹구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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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호 18면

뜨겁게 달아올랐던 주택시장이 식는 걸까. 청약경쟁률이 떨어지고 거래량 증가세가 주춤해졌다. 가격 상승률도 낮아졌다. 시장 열기가 조금 식는 정도를 넘어 냉탕으로 급변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다.


이 같은 우려의 배경에 ‘공급 과잉’이 있다. 예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주택이 쏟아졌으니 수요를 초과한 공급 과잉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급 과잉이란 표현 뒤엔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가격 하락’이 뒤따른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니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상식적인 경제논리다.


올해 주택시장 성적표를 보면 수요가 많이 소진됐고 공급은 하늘 높이 쌓였다. 1~10월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량이 68만여 가구로 정부의 공식적인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최대다. 주택시장 최대 호황기로 꼽히는 2006년보다 32% 더 많다. 2006~2014년 연평균과 비교하면 39% 늘었다. 특히 서울은 걸신 들린 것처럼 주택을 먹어 치웠다. 올해 거래량이 이전 평균의 1.9배에 달한다. 올 한 해에 얼추 2년간의 거래가 이뤄졌다.

올해 전국 신규 분양물량 48만 가구공급의 잣대는 신규 분양물량이다. 올해 전국에 분양되는 새 아파트가 48만 가구 정도로 예상된다. 지난해의 1.6배 규모이고 2000~2014년 연평균보다 84% 더 많다. 역시 2년 정도 분양되던 물량이 한 해에 봇물을 이뤘다.


분양을 하면 2~3년 뒤 공급으로 현실화한다. 올해 엄청나게 분양되면서 2년간 이뤄줘야 할 입주가 한꺼번에 몰리는 셈이다. 새로 들어서는 주택수만큼 기존 주택은 매물이나 임대로 시장에 나와야 한다. 입주 봇물에 따른 시장의 충격은 불 보듯 뻔하다. 두 끼를 한 번에 먹는 셈이니 소화불량에 걸릴 게 분명하다.


요즘 분양시장은 직접 거주를 생각하는 실수요 위주여서 새 아파트 당첨자 상당수가 주변 지역 수요다. 때문에 주거 선호도가 떨어지는 지역과 분양이 집중된 곳을 중심으로 ‘입주 폭탄’의 충격이 클 수 있다. 이는 주택시장 전체로 파장을 일으킨다. 공급 과잉 예상 시나리오다.


그런데 주택시장을 다시 ‘병’들게 할 정도로 공급 과잉이 심각한 것일까. 한 지점이 아니라 시장을 중장기적으로 보면 공급량이 달리 보인다. 주택시장 침체로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서울·수도권 연평균 분양물량이 10만여 가구다. 그 이전보다 5만 가구 정도 적다. 5년간 누적된 부족분이 25만여 가구인 셈이다.


2010년 이후 서울·수도권에 입주한 아파트가 연평균 11만여 가구로 역시 그 전보다 연평균 5만 가구 가량 모자란다. 한끼 과식으로 배탈이 날 수 있겠지만 몸까지 상하지는 않는다. 서울·수도권 주택보급률이 이제 100% 정도여서 시장이 여유 있게 돌아가려면 주택이 더 늘어야 한다.


신규 분양물량의 질이 과거와 다르다. 금융위기 직후 입주 쇼크는 전용면적 85㎡ 초과의 중대형이 주도했다. 집이 큰 만큼 자금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피해 밀어내기로 나온 물량의 가격이 크게 오르던 때여서 입주를 위한 잔금 마련이 쉽지 않았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 가운데 실수요보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수요가 많았다. 시장에 새 아파트 매물이 넘쳤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올해 분양된 물량의 92%가 전용 85㎡ 이하 중소형이다. 중소형 비중으로 역대 최고다. 올해 분양가가 다소 오르기는 했지만 주변 시세를 많이 벗어나지 않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중소형 많아 금융위기 때와 다른 양상금융위기 직후와 지금의 금리가 크게 차이 난다. 금리는 대출부담과 직결된다. 새 아파트 잔금을 치르는 데 부족한 자금을 대개 대출로 마련해서다.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는 3.25%(2011년)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1.5%다. 미국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지만 크게 오르기는 힘들 것 같다.


집이 크지 않고 분양가가 비싸지 않은 데다 금리가 높지 않아 새 아파트 자금 마련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내년에도 계속 예년 수준을 크게 웃도는 분양이 이어진다면 공급 과잉이 심각해질 수 있다. 내년까지 분양물량이 대거 쏟아지면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소화능력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년 이후 분양될 물량이 많지 않다. 업체들이 묵혔던 것뿐 아니라 앞으로 분양할 사업장도 올해 최대한 사업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택지 개발을 중단해 업체들에 공급될 아파트 용지도 바닥나고 있다.


물론 공급 과잉 걱정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공급 과잉 우려를 지나치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안장원 기자?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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