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끝났다" 시민 수만 명 폭우 속 '강인한 공작새'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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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아웅산 수지 여사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지지하는 시민 수천 명이 미얀마 양곤의 NLD 당사 앞에 모여 총선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양곤 AP=뉴시스]

9일(현지시간) 반세기 만에 군부독재 종식을 맞이하게 된 미얀마에는 성큼 다가선 민주화를 자축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수지, 우리 위해 당신의 역사 써주오”
붉은 옷 시민들 “우리 삶 달라질 것”
수지 여사에 공들인 중국, 환영 성명
코트라 “한국 기업 기회 확대될 것”

 선거 개표 결과가 속속 나오자 옛 수도 양곤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사 앞에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지지자 수천 명이 모였다. 이들은 집중 호우 속에서도 밝은 얼굴로 ‘강인한 공작새’(Strong Peacock, NLD의 상징)란 제목의 응원가를 불렀다. “수지는 전 세계가 다 아는 미얀마인의 지도자라네. 이제 독재가 물러갈 수 있도록 우리 미래를 위한 당신의 역사를 써주오. 독재는 물러가라”라는 노래가 시내에 울려 퍼졌다.

 ‘미얀마의 얼굴’로 불리는 셰다곤 파고다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선거 개표 결과가 중계됐고, 시민 수만 명이 이를 지켜봤다.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 수감되기도 했던 학생 운동가 코코기는 워싱턴포스트에 “이번 선거는 시민들이 자신의 의지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며 “지난 30년간 독재에 희생되어 온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 결과를 기다리던 한 시민은 “NLD가 이기면 미얀마가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80%에 달해 민주적인 정권 교체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8일 선거일에는 불교사원과 각급 학교, 정부 기관 건물 등에 개설된 투표소에 한 표를 행사하러 나온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됐다. 당초 선거 부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지만 각국의 참관인들은 “투표는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에는 유엔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파견한 참관인 등 1만여 명의 선거 감시요원이 투입됐다.

 세계 각국도 경이로운 눈으로 총선 개표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참관단을 파견하는 등 미얀마 선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미얀마의 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을 환영한다”며 “미얀마가 선거 후 각 분야의 정치 프로세스를 법에 따라 진행하고 국가 안정과 장기적 발전을 지속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일찌감치 압승이 예상됐던 아웅산 수지 여사의 NLD에 공을 들여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 6월 수지 여사를 처음으로 초청해 국빈급 예우를 갖추기도 했다. BBC 중국어판은 “중국이 미국 해군이 장악하고 있는 믈라카 해협 대신 미얀마 내륙 수송로를 거쳐 중동 원유 및 천연가스를 수입하기 위한 속셈이 엿보인다”고 꼬집었다. 미얀마는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1.07%를 차지하고 있으며 구리·아연·주석 등 산업용 금속 자원도 풍부하다. 이번 총선이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을 띠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블룸버그는 “미얀마에 진출한 일부 외국계 기업들이 이번 미얀마 총선이 가져올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총선에 승리한 NLD에 경제 전문가가 많지 않고, 정부 행정을 담당했던 인사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얀마의 토지·광산 등 경제 자원을 군부 관련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과 군부가 이권을 두고 다툼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NLD가 집권하면 한국 기업의 미얀마 진출 여건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는 9일 “ 선거로 지연돼 온 각종 경제입법들이 시행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외국인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던 투자법 대신 ‘차별 없는 공평한 대우와 투명성’을 강조하는 신투자법이 발효되면서 외국인 투자 환경이 더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 안전을 위해 오른쪽 핸들 차량 운행이 금지될 예정이어서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업체가 수혜를 볼 전망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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