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 저리게 우아한 곡예, 뉴욕 마천루서 외줄 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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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기술을 10년 이상 탐구하고 시도해 온 저메키스 감독의 신작 ‘하늘을 걷는 남자’. [사진 UPI]

그곳에 하늘이 있어, 남자는 걷는다. 1974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건물을 가로질러 외줄타기를 했던 한 남자의 도전이 극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28일 개봉,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로 재현된다. 남자는 프랑스의 곡예사 필리페 페팃이다. 그가 쓴 에세이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2008, 이레)로부터 출발한 이 영화는 불가능한 꿈을 품은 한 이상주의자의 원대한 도전을 그린다.

내일 개봉 ‘하늘을 걷는 남자’
페팃 ‘예술적 쿠데타’ 실화 바탕
손에 땀 쥐는 3D 아이맥스 영상

영화는 페팃(조셉 고든 래빗)이 변사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서커스 곡예단의 황홀한 자태에 넋이 나간 그는 줄타기를 곧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페팃의 시선은 자연스레 곧 완공되는 412m 높이(110층)의 세계무역센터로 향한다. 지금은 9·11 테러로 사라진 두 빌딩 사이를 밧줄로 연결해 동이 트는 아침에 그 위를 걷겠다는 것이다. 페팃은 (당연히 불법인) 이 행위를 ‘예술적 쿠데타’로 명명한다.

하지만 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법. 조력자를 모집하는 것부터 건물에 대한 정보 수집, 야음을 틈타 옥상에 오르기, 줄 연결하기 등 단계마다 뜻밖의 고비가 덮친다. 이런 전개가 마치 하늘을 훔치기 위해 범죄를 모의하는 ‘케이퍼 무비’처럼 박진감있게 펼쳐진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마지막 30여 분 간의 클라이맥스를 위한 도움닫기다.

우여곡절 끝에 줄 위에 선 페팃의 자태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오히려 오금이 저리고 손에 땀을 쥐는 것은 처음 줄을 타는 관객의 몫이다. 영화는 페팃의 눈을 통해 뉴욕의 하늘을 느끼고, 시가지 풍경을 내려다 보게 만든다. 그렇게 페팃과 함께 우아하고 아슬아슬한 곡예가 시작된다. 3D 아이맥스의 심도와 광활함을 이 영화만큼 내용과 한몸이 되어 구현한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스릴감을 선사한다. 공포를 넘어 외줄 위에서 진짜 자유로워진 순간,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다.

생명을 건 도전은 최근 개봉한 영화 ‘마션’이나 ‘에베레스트’에서도 다룬 주제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그 도전의 목적에 ‘예술’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페팃이 목숨을 걸고 외줄을 타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늘을 걷는 인간은 곡예사가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쓸모없기 때문에 가치있는 대상에 투신하는 인간은 무모하지만 숭고하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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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이은선 기자): 줄 위에 선 남자의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자유가 우리 모두의 체험이 되는 마법. 이제는 사라진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부치는 사려 깊은 러브레터이기도.

★★★☆(장성란 기자): 한 가닥 줄에 의지한 채 공중을 오가는 주인공이 무릎을 꺾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관객도 심장이 덜컹거린다. 무모할지라도 꿈을 향한 도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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