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행동하는 사랑 '해비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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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충남 아산시 도고면 금산리에는 다른 농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년간 한국 사랑의 집짓기 (해비탯 : Habitat)운동이 건설한 '회합의 마을'이다. 26동의 아담한 목조건물에 1백4가구가 입주해 있는 이 마을은 입구에 교회가 세워져 있고 한가운데에 주민들의 사랑방 격인 마을회관이 있다.

*** 집 지을 땅 구하기 갈수록 힘들어

또 마을회관 앞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방문객에게 해비탯 운동을 알려주는 해비탯 박물관도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회합의 마을은 5백여 입주자들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하나의 큰 가족으로 아름답고 소망스러운 공동체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올해에도 한국 해비탯 운동은 지난해 태풍 루사로 삶의 터전을 잃은 국내의 수재민에게 집을 지어주기 시작했고 해외에도 자원봉사자와 헌금을 보내고 있다.

행동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해비탯 운동은 제3 섹터 사회운동이다. 제1 섹터, 즉 공공분야는 정부활동을 주축으로 국민의 안위와 기본권을 보장해 주고 제2 섹터, 즉 민간 경제부문은 경제활동을 통하여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는 각각 제1, 제2 섹터 운용의 기본 원리로서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사회를 원활하고 조화롭게 운영할 수 없다.

분출하는 개인과 집단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고 사회 내의 갈등과 대립 투쟁도 순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이나 재력이 아니라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이웃사랑을 구체적으로 행하는 제3 섹터의 활동을 증진하고 격려해야 한다.

해비탯 운동의 정신은 자립.협력.봉사정신이다. 선정된 입주 가정들은 해비탯의 도움으로 갖게 되는 새 집을 무상으로 받지 않는다. 입주 가족들은 5백시간 이상 집짓기 공사에 참여한다.

건축에 들어가는 실비도 무이자이긴 하지만 15~18년에 걸쳐 매달 상환한다. 이웃이 모은 성금과 헌물로 목돈이 없어 집없는 설움을 겪던 가정들이 꿈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특유의 문제가 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를 확보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수요자는 땅이 없고, 지자체마저 부동산으로 이익을 추구해 대지 제공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대지 확보비용을 마련하기란 너무나 힘겹다. 땅을 소유한 공공기관이나 민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대지를 기부하는 것이 어렵다면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이나 공공단체.기관들이 대지를 무상 또는 아주 저렴한 유상대여를 해주는 것은 어떨까. 정부가 '사랑의 나눔' 차원에서 대지를 대여한 이들에게 조세 혜택을 준다면 대지 무상대여가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이웃과 땀·소유 나누는 아름다움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많은 자원봉사자가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해온 전통이 강하지만 요즈음 집단 이기주의와 개인본위 이익추구 또한 팽창 일로여서 더 많은 자원봉사자와 더 헌신하는 자원봉사 활동이 요구된다.

사회의 조화를 이루고 민족이 통합하는 데에는 '행동하는 사랑'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한 회사의 사장과 직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이, 부모와 자식이 함께 땀을 흘리면서 알지 못했던 이웃을 위해 집을 짓는 장면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요,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다.

이런 감동 속에서 국가의 생명력은 크고 강해진다. 자기 이익을 주장하고 떼쓰는 집단행동이 아니라 이웃의 평강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소유를 나눌 수 있는 넉넉함이 사회 공동체를 굳건히 하는 기틀임을 인식해 '행동하는 사랑'에 모두 동참하기 바란다.

정근모 호서대학교 총장.한국해비타트운동연합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