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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성과만큼 과제도 떠안은 한·미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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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6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사상 처음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별도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북한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을 양국이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명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면서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문도 열어놓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특히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utmost urgency)과 확고한 의지를 갖고 다루기로 합의했다”고 밝혀 ‘전략적 인내’에 머물러온 미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질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핵에 손을 놓은 듯한 인상을 보여 왔다. 이로 인해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고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거나, 중국이 대북 공조 전선에서 이탈할 우려가 커져온 게 사실이다. 이제 한·미 정상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북핵 협상 프로세스가 탄력을 받을 단초가 마련됐다.

 성명은 또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도발엔 단호히 대처하되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원칙을 양국 정상이 재확인한 것이다. 북핵 문제는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은 뒤에서 돕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다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펴나갈 기반을 미국이 보장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명에서 한·미가 북한 비핵화를 위해 중국과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의 소외를 우려해 한·미·중 공조에 소극적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에 두 정상이 한·미·중 공조에 합의함으로써 3국 간에 보다 긴밀한 북핵 공조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한국의 중국 접근이 북핵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서울의 입장을 워싱턴이 인정했다는 의미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미·중 공조와 함께 한·미·일과 한·중·일 협력이 활성화될 계기를 마련한 것도 성과다. 북핵, 일본 우경화, 과거사, 영토 문제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미가 다자간 협력을 확대해 한반도와 지역 안정에 이바지하겠다는 의미 있는 조치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임기 중 처음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양자회담 계획을 밝힌 점도 미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미 국방부(펜타곤)를 방문해 혈맹관계를 각인시킨 것도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군사 퍼레이드 참석으로 워싱턴 조야에 퍼진 ‘중국 경사론’을 상당 부분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실제로 손에 잡히는 성과를 거뒀느냐는 점에선 미흡한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공동성명은 “북한과의 대화에 (한·미가) 열려 있다”고 강조했지만 북한을 대화로 유도할 인센티브는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구체적인 로드맵도 찾을 수 없다. 또 미국이 북핵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겠다고 다짐하고 한·미·중 공조를 약속했지만 잔여 임기 1년인 오바마 행정부가 정말 행동으로 옮길지는 미지수다. 반면 “한국이 한·미·일 공조 복원에 합의했으니 속히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라”고 등을 떠밀 가능성은 커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국 정부의 후속 조치다. 특히 우리 당국자들의 소신 있고 전략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북한을 설득해 대화로 이끌고, 미국과 중국의 적극적 관여를 끌어내 6자회담이 재개되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한 역시 한·미는 물론 중국·러시아까지 한목소리로 핵도발 중단을 촉구하는 현실을 깨닫고 속히 대화에 나와야 한다. 대화에 복귀한다면 한·미는 평화체제 협상을 포함해 북한의 희망사항을 얼마든지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이와 함께 오바마가 “중국이 국제법 준수에 실패하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달라”고 공개 주문한 것도 우리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미·중 간에 고조되고 있는 남중국해 갈등을 놓고 미국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국의 ‘중국 경사’는 기우일 뿐”이라고 해명한 박 대통령에게 오바마가 “행동으로 입증하라”고 받아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갈수록 중요해지는 중국의 무게를 감안하면 우리가 남중국해 갈등과 관련해 대놓고 특정 국가의 잘못을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언제 어떻게 격변할지 모를 미·중 관계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며 치밀한 전략적 계산 아래 우리의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