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교과서 내놔도 편향 교육 땐 소용 없어 … 교사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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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EBS 교재로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다. 본지가 종로학원·하늘교육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 올해 수능에서 한국사를 선택한 수험생 692명 중 63.4% 가 “한국사를 EBS 교재로 공부한다”고 답했다. 수능과 연계 되는 EBS 교재만 달달 외우는 게 교실의 현실이다. [신인섭 기자]

2013년 12월 서울 A고등학교 1학년 2학기 한국사 기말고사에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이 출제됐다. 프랑스 공산당이 6·25전쟁 당시 반미(反美) 선전을 위해 공산당원이던 피카소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시험지의 13번 항목에는 ‘다음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건으로 옳은 것은?’이란 질문과 함께 선택할 답안으로 ‘경남 거창 사건’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 ‘인천상륙작전’ ‘서울 수복’ 등이 제시됐다. 교과서 심의 과정에 이 그림을 싣느냐 마느냐를 놓고 표결까지 해 가며 들어갔으나, 일단 교과서 안에 포함되고 난 후엔 자유롭게 시험문제로까지 출제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 이참에 제대로 <하> 역사교육 방식도 바꾸자

 이 시험의 16번 항목에는 북한의 천리마 운동 포스터가 출제됐다. 깃발을 든 북한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리는 그림 아래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보수주의 소극성을 불사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다음 포스터와 관련된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이란 이 문제의 정답은 ‘대중의 정신력을 강화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는 운동’이었다.

 한국사 교과서를 제대로 잘 만드는 일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의 역사 교육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일선 역사교사들의 정치적·이념적 성향이 수업에, 심지어 시험에 반영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역사교육학자들은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중립적인 교과서를 만들어도 교사가 편향적으로 가르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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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들은 우선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의 중립성’을 강조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역사 토론 수업을 한다고 다 중립적인 건 아니다”고 경고한다. 주제 선택에서부터 교사의 편향성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토론에는 찬성과 반대가 있게 마련이다. 토론을 마무리할 때 교사가 정리 멘트를 한다. 그때 한쪽 입장을 취하면 학생들은 그 방향으로 사고가 정리돼 버린다. 그래서 교사는 역사 토론수업에서 철저하게 중립적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점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역사적 사안에 대해서는 교사의 중립성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우매한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사교육학자들은 “역사는 지혜의 보고”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 우리의 역사 교육 현장은 어떨까. 과연 학생들은 역사 과목을 통해 지혜를 긷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역사 교육 방식’을 지적한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 토론수업을 하려면 시수(수업시간 수)가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채 서울 무학여고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료를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원 사료를 많이 제공하는 역사 수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가 생각하는 ‘정답’을 던져주기보다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틈을 제공하는 교육 방식이다. 김태우 삼숭중 교사는 “ 역사적 사안에 대해 이 관점이 왜 맞는지, 왜 틀리는지 서로 토론하고 논쟁할 때 아이들이 역사를 보는 근육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대영 서초고 교장은 “생활 속 역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시험을 쳐야 하니 이론수업은 하되, 토론수업을 늘리고, 현장학습 등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신준봉·백성호·성시윤·김호정·강태화·윤석만·노진호·백민경 기자
뉴욕·워싱턴·런던=이상렬·채병건·고정애 특파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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