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인권국가와 더 큰 경제권 만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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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일본·미국이 주도하고 민주주의·인권·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함께 아시아·태평양에 자유와 번영의 바다를 만들겠다”며 중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했다. [AP=뉴시스]

세계 경제 1위인 미국과 3위인 일본이 합세해 2위인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노동과 환경에 창을 겨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 발표와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보도에 따르면 미·일 등 12개국이 합의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노동·환경과 지적재산권·인터넷에서 ‘국제 기준’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베트남의 국영기업도 단체협상권·최저임금·작업장 안전 등을 보장하며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아동 노동·강제 노동은 당연히 엄단 사항이다.

 환경 조항도 포함돼 야생동물 밀거래와 불법 어로·벌목 및 수자원 남획이 금지되고 어종·동물 보호가 들어갔다고 NYT는 전했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무역협정 사상 가장 강력한 노동·환경 규정”이라고 자평했다. 이들 규정은 회원국이 준수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다. 타결된 TPP에는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단일 기준이 마련됐고,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도 인터넷 개방 원칙을 따르도록 했다. 중국으로선 민감한 분야들이다.

 WSJ는 “TPP의 노동·환경 조항 등은 중국에 대한 압력을 의미하며 미국 스타일의 통상 규칙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간 미국과 일본에선 중국이 환경·노동에서 국제 기준을 무시한 채 저임금으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신형대국 관계를 내걸어 미국에 중국의 힘을 존중하라고 들이받아왔다. 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끌어들여 ‘기존 대국’의 경제 룰을 따르라며 중국의 약점을 찌른 것이다.

 TPP로 일거양득한 일본은 환영 일색이다. 미국으로부터 아시아의 경제 맹주로 공인받는 외교적 성과는 물론 미국 시장 진출이 더 쉬워지는 경제적 실리까지 챙겼다. 아베 총리는 “TPP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더 나아가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등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더 큰 경제권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과 미국이 주도하고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법의 지배 등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함께 아시아·태평양에 자유와 번영의 바다를 만들겠다”고도 밝혔다. 인권과 법치 등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중국)는 끼지 못한다는 취지라 중국 견제가 다분하다.

 중국 상무부는 “협정 타결이 역내 자유무역을 촉진하고 경제 발전에 공헌하길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중국 매체들은 “TPP는 갈 길이 멀다”는 반응으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신화통신은 “협상이 타결됐다지만 관련 국가들의 의회 비준은 물론 회원국 국민의 반대가 많아 실행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도쿄·베이징·워싱턴=오영환·최형규·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명칭은 다르지만 여러 나라가 뭉쳐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TPP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고 베트남·호주·칠레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RCEP는 중국 주도로 협상이 진행 중이며 한국·인도·필리핀 등 16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한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7개국은 TPP와 RCEP에 동시에 참여했다. 발효 후엔 협정 참가국 간 관세 같은 무역규범이 통일되면서 같은 경제권역으로 묶이는 효과가 난다. 전 세계 교역량의 30%를 각각 아우르는 협정이라 둘 다 ‘메가 FTA’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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