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 부실 털기 '길이 안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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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노무현 대통령이 연이어 투자신탁회사의 구조조정 문제를 언급해 주목된다. 盧대통령은 지난 13일 세무관서장 초청 특강에 이어 17일 민주당 정대철 대표를 만나 경제불안 요인을 대부분 극복해 나가고 있다며 투신사 부실 문제만 처리하면 된다고 밝혔다.

盧대통령이 말하는 투신사란 현재 증권사로 전환한 한국.대한.현투증권 등 3개사다. 이 가운데 현투증권은 미국 푸르덴셜과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지만, 한투증권과 대투증권의 처리 문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부는 두 회사를 정상화한 뒤 국내외에 매각한다는 방침을 정했을 뿐 구체적 일정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두 회사의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5조원 이상의 신규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가 예보채를 발행하거나 금융권에서 차입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에는 공적자금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미 두차례에 걸쳐 한투에 4조9천억원, 대투에 2조8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었다. 그럼에도 두 증권사의 부실은 해소되지 않아 지난해 한투가 1천8백억원, 대투가 1천2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자본잠식 규모도 각각 7천억원, 3천5백억원에 이른다.

정부의 매각 방침과 달리 두 증권사는 자력으로 회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투 김병균 사장은 18일 전직원에게 사내 e-메일을 보내 "지금부터 비상경영 체제로 돌입해 올해를 경영정상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 부서장 전원으로부터 경영정상화 결의를 다지는 각서를 제출토록 했다. 金사장은 또 "증시가 활성화하면서 4~5월 5백49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사옥 매각.증권 영업강화 등을 통해 9월까지 자본잠식을 모두 털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투증권도 최근 투신과 증권으로 이원화된 영업 조직을 통합하고, 자산관리 영업을 강화하는 등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홍성일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합병이나 매각 등에 대비하기 위해 때가 되면 정부에 감자(減資)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가증권의 평가손실 등 잠재부실을 털어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투신사의 경영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와 정부 내 시각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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