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번호는 폐기"…'항복선언' 종용하는 친박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의 공개적 충돌을 피하려했지만, 새누리당내 친박근혜계는 오히려 김 대표를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마치 청와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양상이다. 특히 친박계는 “안심번호제는 폐기됐다”면서 사실상 '항복선언'을 종용했다. 이런 주장에 총대를 멘 친박 인사는 중진 홍문종 의원이었다.
홍 의원은 2일 라디오 방송에 잇따라 나와 “안심번호를 통한 공천은 사실상 폐기가 된 게 아닌가 싶다”며 “당내 특별기구에서 안심번호까지 포함해 논의하겠지만, 실제로 안심번호로 공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심번호가 폐기됐다는 말은 여론조사형 국민공천제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존 새누리당 공천 방식대로 총선후보를 정할 수밖에 없고, '무경선 낙점형'의 전략공천을 할 여지가 생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이동통신사가 선거인단에게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암호화된 가상번호(예컨데, 050-1111-2222)를 부여하면, 이 번호로 여론조사를 해 후보를 정하는 방식이다. 국민공천 형식이므로 당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선거인단이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이런 방식을 모든 지역구에 적용해 공천을 하려한다. 전략공천은 단 한 곳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홍 의원은 이 방식을 '물 건너 간 것'으로 규정했다. 그는 “김 대표가 안심공천제를 비롯해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는 걸 자제하겠다고 했다”며 “특별기구의 결론으로 공천을 하겠다고 한 걸로 봐서 이 문제는 봉합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 당헌ㆍ당규에 있는 공천 제도를 가지고도 충분히 당원과 국민의 뜻에 맞는 후보를 공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당헌(99조)에는 “당원과 일반국민이 50%씩 참여하는 국민참여선거단 경선에서 총선 후보를 정한다”는 규정이 있다. 특히 당헌(103조)는 '후보자의 경쟁력이 낮을 경우 등에 우선추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 근거다.

홍 의원은 “누구도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 없다”면서도 “야당은 '참신한 후보를 내겠다, 20%를 전략공천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전략·전술 없이 어떻게 전쟁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친박계인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특정 계파에 혜택을 주는 낙하산 공천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전략공천을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청와대는 확전 자제 움직임을 보이면서 물밑에선 친박계를 지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로 파문을 일으켰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스스로 정리에 나섰다”며 “우리는 안심번호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전달한 만큼 당내 논의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모는 “처음부터 당내 기구를 만들어 논의하자고 했는데, 김 대표가 개인 생각을 추진하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쪽이 완승을 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될까 걱정”이라며 “누군가 정치적으로 죽은 뒤에야 갈등이 끝난다면 여권의 집안싸움을 보는 국민의 안타까움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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