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北核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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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은 이미 '북한 목 조르기'에 착수했는가.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에 이어 중국도 북한의 정권 교체에 나선 것인가.

중앙일보는 김영희(金永熙)대기자의 사회로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학)교수와 박한식(朴漢植.조지아대학)석좌교수의 좌담을 열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의 향배와 한.미 관계 현안을 짚어봤다.

◆김영희=북한 핵 문제가 지난해 10월 불거진 이래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습니다. 북한의 핵 게임이 핵무기 확보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협상용 카드냐 하는 것입니다.

◆오버도퍼=북한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핵카드를 사용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방북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에게 핵개발 사실을 시인했어요. 나는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강석주 외무성 부상에게 "켈리에게 뭐라고 말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강석주는 "We are entitled to have this program(우리는 핵개발 프로그램을 가질 권리가 있다)"이라고 말했다고 영어로 또박또박 얘기하더군요.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것은 평소 '통큰 정치'를 강조하는 김정일의 개인적인 스타일과도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박한식=동감입니다. 북한의 핵 개발 의지는 김일성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일성 주석의 전기 '세기와 더불어'를 읽어보면 핵 개발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영희=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이 설정한 마지막 금지선(red line)을 넘을 때에도 평화적 해결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혹시 미국이 영변 핵 시설 폭격에 나서지 않을까요.

◆오버도퍼=영변 핵 시설에 대한 미국의 정밀 폭격 시나리오는 비현실적입니다. 영변을 폭격한다 해도 미국은 북한의 추가적인 플루토늄 추출을 차단할 뿐이에요. 북한이 비밀리에 추진 중인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개발은 지속될 겁니다. 공격을 받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제2의 한국전이 발발할 수도 있어요.

◆박한식= 북한 폭격론은 미국의 대북 정책에 달려 있어요. 만일 부시 행정부가 김정일 교체를 결심했다면 미국은 영변이 아닌 김정일의 저택을 정밀 폭격할 겁니다.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만일 미국의 김정일 제거 움직임을 북한이 눈치챌 경우 그냥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이 먼저 선제공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미국은 금지선을 포함한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공식적으로 미국은 핵을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수출을 용납할 수 없어요. 그러나 미국의 군산(軍産)복합체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불량소년(Bad Boy)' 이미지는 나름대로 활용 가치가 있어요. 게다가 미국은 최근 미사일방위체제(MD)를 추진하고 있는데 북한은 MD를 정당화할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될 수 있어요.

◆김영희=미국은 지난 10일 도쿄(東京)에서 일본.호주와 함께, 마약을 밀매하고 미사일 같은 무기를 수출하는 북한 선박을 나포하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12일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1개국이 모여 북한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실천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미국의 '북한 목 조르기'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닙니까.

◆오버도퍼=미국의 새로운 대북 압박정책을 눈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 봉쇄(Stealth Sanction)'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북한의 주요 외화원(外貨源)이 마약.무기.위조지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에요. 따라서 미국의 새로운 대북 봉쇄 조치가 취해질 경우 북한 지도부는 정신적.물질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봅니다.

◆박한식=나는 의견이 달라요. 북한은 이미 지난 50년간 미국의 경제봉쇄를 받아왔어요. 미국이 북한을 겨냥해 새로운 경제제재를 가한다 해도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 듭니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마약 밀매는 북한의 중앙정부도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을 공산이 있어요. 북한은 몇 년 전부터 독립채산제를 운영하고 있어요. 지방정부와 각급 공장, 기업소가 재주껏 외화를 벌어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거죠.

◆김영희=최근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필두로 한 워싱턴의 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한에 대해 부쩍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신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설 만한 세력이 워싱턴에 있다고 보십니까.

◆오버도퍼=이라크를 북한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이라크전은 전쟁을 주장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은 물론 의회와 국민의 지지를 받아 했지만 북한은 달라요. 또 이라크 전쟁 자체는 끝났지만 현재 워싱턴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와 정보 왜곡을 둘러싼 논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어요. 한마디로 미 국민과 의회는 북한과 새로운 전쟁을 치를 분위기가 아니에요.

◆김영희=오버도퍼 교수는 지난 5일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열린 북핵 관련 세미나에서 중국이 북한의 정권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북한의 정권 교체라면 한마디로 김정일 제거를 의미할 텐데 그 뉴스가 신뢰할 만한 소식통에서 나온 얘기입니까.

◆오버도퍼=한가지 해명할 게 있어요. 중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제 얘기가 아니라 내가 재직하고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의 중국 문제 전문가 데이비드 램턴 교수의 얘기를 소개한 것입니다. 물론 중국 지도부가 김정일 제거를 결정했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그러나 이것이 흥미로운 얘기인 것은 틀림없어요. 내 느낌으로는 중국이 6.25 전쟁 이래 지금처럼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간여한 적이 없어요.

◆박한식=중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잘 믿어지지 않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중국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내정 불간섭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거든요. 또 중국이 설사 김정일 교체에 성공한다 해도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중국에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김영희=북한이 과연 미국이 추진하는 5자회담을 받아들일까요.

◆오버도퍼=다소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북한은 결국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이 참여한 5자회담을 수용할 것으로 봅니다. 한편 5자회담은 미국에 큰 부담을 안겨 줄 수 있어요. 왜냐하면 미국이 5자회담 테이블에 나가려면 보다 현실적인 협상방안과 함께 북한에 안겨줄 선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짐작하건대 선물 보따리에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약속, 경제지원 등이 포함될 수 있어요. 워싱턴의 강온파들이 선물 보따리 내용을 둘러싸고 한바탕 갈등을 빚을 공산이 큽니다.

◆박한식=같은 생각입니다. 앞으로 북한은 5자회담 의제에 핵 문제뿐만 아니라 안전보장.경제지원 문제 등을 포함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희=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盧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사이에 진정한 신뢰감이 형성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버도퍼=한.미 정상회담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대북 정책 같은 핵심 이슈를 심도있게 논의하지는 않았겠지만 머리를 맞대고 개인적 친분을 쌓은 것은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박한식=미국은 당초 盧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민족적인 색채를 띨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그러나 盧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바꿔 미국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어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盧대통령을 편안히 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김영희=내년에 미국의 대선이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강경책을 지속하는 것이 유리할까요, 아니면 좀 더 평화 지향적으로 나가는 것이 유리할까요.

◆오버도퍼=미국 속담에 '네 수표책에 투표하라(Vote your pocketbook)'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사정에 따라 투표하라는 얘기지요. 미국 경제가 내년 대선을 좌우하는 1차 요인이 될 것입니다. 북한 같은 외교 문제는 2차적이에요. 부시 대통령도 내년까지는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면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려고 할 것입니다.

◆박한식=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외국과 군사적 분쟁 등 갈등을 빚을 때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전통이 있어요. 대선에 출마한 부시 대통령이 여론조사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면 북한 핵 문제 등을 빌미로 위기를 조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정리=최원기.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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