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1만 시간 애써도 안되는 게 있다 … 올림픽 메달은 타고 나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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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스포츠 유전자
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496쪽, 2만2000원

2007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높이뛰기 결승. 우승 후보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스웨덴의 스테판 홀름이었다. 홀름은 여섯 살 때 높이뛰기를 시작, 20여 년간 피나는 훈련을 거쳐 정상에 오른 선수였다. 또 한 명은 해설자들이 ‘실력이 미지수’라고 평한 바하마의 도널드 토머스. 농구를 좋아하는 대학생으로 살다 우연히 높이뛰기에 재능을 발견, 8개월 간의 훈련을 거쳐 대회에 나온 신예였다. ‘마의 기록’으로 여겨졌던 2.35m. 홀름은 뛰어넘지 못한다. 반면 토머스는 허우적대며 가로대를 넘었고, 첫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포츠 능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훈련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인가. 육상 선수 출신으로 현재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스포츠 분야의 오랜 논쟁인 ‘본성(유전자) vs 양육(훈련)’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홀름과 토머스의 사례는 ‘유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토머스는 스프링 역할을 하는 아킬레스건의 길이가 32cm로 유난히 길었다. 저자는 맬컴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로 유명해진 ‘1만 시간의 법칙’ 역시 틀렸다고 말한다. 체스 선수 중 어떤 기사는 고작 3000시간을 연습하고 마스터 수준에 오른 반면, 다른 기사는 같은 수준에 오르는 데 2만3000시간이 걸렸다. 연습은 중요하나 그 효과는 타고난 재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있다.

 저자는 분명 유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종목에 따라 필요한 재능은 다르며, 따라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타고난 능력의 유형을 잘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선수 집안에서 자라 12세가 되어서야 농구를 시작한 농구 스타 스티브 내시, 배드민턴·농구·축구를 고루 경험하고 테니스를 선택한 로저 페더러 등이 그 좋은 예다.

 서른 살에 철인3종경기를 시작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크리시 웰링턴의 말에 이 책의 주제가 담겼다. “누구나 재능이 있어요. 하지만 그 재능은 숨겨져 있을 때도 있지요. 용감하게 나서서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쪽에 재능이 있는지 모르고 살지도 몰라요.” 스포츠에만 국한된 조언은 아닐 것이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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