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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학자금 대출 해법 관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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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선거판에 ‘괴짜’가 출현하면 민생 공약은 뒷전으로 밀린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과 공화당의 ‘막말 후보’ 도널드 트럼프 얘기다. 이 바람에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처지가 딱하게 됐다. 그가 공들여 준비한 서민 정책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유권자의 관심권에서 멀어질 판이다.

 지난달 중순 발표한 학자금 부담 경감 공약도 그중 하나다. 한국 언론이 ‘미국판 반값 등록금’으로 소개한 이 계획은 집권 후 10년에 걸쳐 3500억 달러(약 414조원)를 투입하겠다는 거대 구상이다. 대학생들이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등록금을 낮추는 것이 주요 목표다. 부자 증세라는 재원 조달 방식을 두고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긴 했지만, 각론 중엔 우리에게 참고될 만한 것이 여러 개 있다.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소득 기반 상환 프로그램’이다. 구체적으로는 학자금 대출 상환액이 소득의 10%를 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회 초년병이 학자금 부채 부담에 짓눌려 낙오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20년간 성실하게 갚으면 남은 부채는 탕감해 준다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도 들어 있다.

 미국의 대학 학비는 비싸다. 주립대도 연간 학비가 2만 달러를 훌쩍 넘고, 웬만한 사립대는 5만 달러를 넘는다.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충당했다면 대개 억대 빚쟁이가 돼서 졸업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졸업 후 취직을 해도 빚 갚기에 허덕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결국 대출금 상환이 밀리고, 디폴트에 빠지는 이가 속출한다.

 학자금 대출 문제의 심각성은 한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청년이 수천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지고 학교 문을 나선다. 대출금 상환이 무리가 되지 않도록 소득을 감안해 갚도록 하는 제도가 이미 있지만, 학자금 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실 학자금 대출 문제는 본질적으로 청년 실업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학비 조달이 곤란한 이들에게 졸업 후 일자리를 잡은 뒤 갚으라고 빌려주는 것이 학자금 대출이다. 그러나 이 구도는 취직이 순조로워야 성립된다. 지금처럼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선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 학자금 대출은 족쇄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결국 신용불량이 돼 정상적인 경제 생활에서 멀어진다. 청년들은 빚 갚기에 급급한 나머지 소비할 여력이 없다.

 개인적으론, 취업 후 성실히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는 경우엔 세제 혜택을 줬으면 좋겠다. 퍼주자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의 소비 여력을 늘려주면 결국 세수로 돌아온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려 쓴 자금 상환에 대해선 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가 이미 있다.

 금융위기 이후 청년 실업, 청년 부채 증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계적 현상이 됐다. 청년을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더 잘 이끌어내는 나라가 경제 전쟁의 승자가 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