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증권업계 1위’ 야망 … 주가 17% 하락 시장은 냉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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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2007년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자신의 인생 목표를 제시했다. 미래에셋그룹을 아시아 1위의 금융투자회사로 키워 모건스탠리·메릴린치·골드먼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고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대도약이 필요했던 것일까. 박 회장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KDB대우증권을 정조준했다. 명실상부한 국내 증권업계 1위로 거듭나겠다는 야심 찬 승부수다. 미래에셋증권은 현재 자기자본이 2조4476억원으로 업계 6위다. 2위인 KDB대우증권(4조2581억원)을 품에 안으면 자기자본이 불어나 1위 NH투자증권(4조4954억원)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압도적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그동안 고심해온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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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셋증권은 9일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주당 예정 발행가는 2만7450원, 총 조달자금은 1조2067억원이다. 당장은 현행 자본시장법상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이 돼야 인가를 받을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회사로 도약하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현재 종합금융투자회사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5곳뿐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를 KDB대우증권 인수를 위한 ‘실탄’ 마련 포석으로 보고 있다. KDB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오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 무리해 가며 증자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반응도 싸늘했다. 10일 코스피시장에서 미래에셋증권은 전날보다 17.56%(6850원) 하락한 3만21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최근 1년래 최저가다. 장중 한때 3만1000원까지 곤두박질했다. 삼성증권은 미래에셋증권의 목표 주가를 7만원에서 4만원으로 대폭 낮추고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보유’로 변경했다. 현대증권도 목표주가를 4만3000원에서 3만5000원으로 낮췄다. 유진투자증권은 아예 투자의견 제시 및 목표주가 산정 대상에서 미래에셋증권을 제외했다. 사실상 매도하라는 신호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자본시장의 기회요인 포착과 대형화를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측면에서 증자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우증권 인수전이 과열돼 인수가격이 예상보다 높아지거나 인수에 실패할 경우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회장의 생각은 확고해 보인다. 그는 사석에서 “금융투자업계가 고인 물과 같아 역동성이 부족하다”고 탄식해 왔다. 대형 M&A를 통해 덩치를 키운 뒤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메기’가 되겠다는 포부다. 박 회장이 던진 승부수는 그가 그동안 걸어온 궤적과도 일치한다.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해 32세에 전국 최연소 지점장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보장된 미래를 마다하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1998년 12월 출시된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는 출시 후 3시간 만에 500억원의 한도액이 모두 채워졌다. 해외로 눈을 돌린 것도 누구보다 빨랐다. 2003년 국내 최초로 해외 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설립했고 이후 전 세계 12개국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현재 운용자산이 국내외를 더해 70조원을 넘어설 정도다.

 지금으로선 성공을 예단하기 어렵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할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선 미지수다. 현재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는 업체는 KB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 중국중신그룹(CITIC) 등이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인수 경쟁이 불붙을 경우 현재 2조원 정도로 평가되고 있는 대우증권 매입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 인수전에서 승리하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인수전에서 패배한다면 후유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이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려다가 그동안 쌓은 ‘공든 탑’을 훼손시키는 것 아니냐는 게 업계의 우려”라고 말했다. 첩첩이 쌓인 난관을 박 회장이 어떻게 돌파해 갈지 업계의 눈길이 쏠려 있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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