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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트럼프, 오바마 향해 “바보 같다” 보수단체는 환호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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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9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 앞에서 열린 이란 핵 합의 반대 집회에서 김현기 본지 워싱턴총국장(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질문하고 있다. [워싱턴 AP=뉴시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땡볕 더위가 여전한 9일(현지시간) 오후 1시께 미국 워싱턴 의회 앞의 잔디 광장. 그늘도 없는 이곳에 모인 수천 명의 청중은 광장 정면에 설치된 연단에 오르는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일제히 환호를 터뜨렸다. 이란 핵 합의를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연합 집회다. 대중 연설을 시작하는 트럼프를 뒤에서 보니 꺼내 놓은 원고 하나 없었다. 앞서 오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워싱턴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준비된 실내 강연을 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트럼프는 “내 평생 이렇게 무능한 협상 결과는 처음 본다”며 “우리는 얻을게 하나도 없고 이란이 우리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외쳤다. 트럼프는 이란 핵 합의를 이끌어낸 버락 오바마 정부를 향해서도 “미국은 정말 바보같은 이들이 이끌고 있다”며 강경 비난했다. 그의 연설 내내 환호는 계속됐다.

 이날 집회에는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인지도 높은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연사로 자리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트럼프였다. 트럼프가 연설을 마치자 100명 안팎의 내외신 취재진들이 일제히 그를 뒤쫓았다. 트럼프에게 악수를 청하는 지지자들까지 함께 몰려 북새통이 벌어졌다. 트럼프를 향해 뛰는 기자에게 한 지지자는 "트럼프는 바쁜 분이다. 이제 가게 해드려”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간 호화 보잉 전용기와 시콜스키 전용 헬기로 전국을 돌았던 트럼프는 이날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대중 집회에 나섰다. 이날도 트럼프를 보기 위해 지지자들이 몰렸다. 텍사스주 출신이라는 40대 여성 브렌다는 “워싱턴 정치에 질렸다”며 “미국의 주인은 ‘우리 인민(we the people)’인데 정말 우리 인민을 위해 싸울 사람은 트럼프”라고 말했다. 그녀는 “트럼프가 우리의 전사(fighter)”라고 거듭 강조했다.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짐 맥도널드는 ‘트럼프’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친구와 함께 들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도 (남북 간에) 장벽이 있지 않은가”라며 “나는 (불법 입국을 막을) 장벽을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한 고등학교는 스페인어만을 사용한다”며 “내 자녀에게 쓰일 교육비가 불법체류자들의 자녀를 챙기는데 쓰이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날 잔디 광장 곳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생명을 기억하라’, ‘이스라엘에 위협이면 미국에도 위협’, ‘법을 지키지 않는 오바마가 왜 감옥에 가지 않나’라고 쓰인 피켓들이 들썩였다. 집회는 성조기에 대한 경례와 국가 제창에 이어 사회자의 기도로 시작됐다. 보수 티파티 회원들, 복음주의자, 낙태 반대론자, 친이스라엘 단체들, 반 오바마 단체 회원들이 집결했다. 수천 명의 집회 참석자 중 흑인과 아시안은 찾기 어려웠다. 기자가 만난 브렌다과 맥도널드도 백인이었다. 트럼프는 이들에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승리가 지겨울 정도로 느껴지게 해줄 것”이라며 강한 미국을 약속했다.

 연설을 마치고 집회 현장을 빠져나가던 트럼프는 “(북한과의) 핵 협상에 근본적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핵 무기를 묻는 취재진들에 이같이 짧게 답했다. 그의 뒤에서 “한국은? 한국은?”이라는 한국 취재진들의 외침에는 얼마 있다가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고 걸어가며 말했다.

 잔디 광장을 벗어나며 집회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그를 향해 또 환호가 터져 나왔다. 미국 정치권과 주류 언론이 당초 ‘괴짜 출마’로 일축했던 트럼프. 그러나 그를 공화당 1등 주자로 끌어올릴 동력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동성결혼 허용, 대이란 협상 정책, 이슬람국가(IS)와의 지상전 회피, 불법이민자 합법화 방침 등 오바마 정부의 대내외 철학에 화병을 앓다 이날 의회 잔디 광장에 모인 이들이 트럼프의 힘이었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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