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현장에서] 금품수수 방지 김영란법 통과시켜 놓곤 장관에게 “법 개정하라” 다그친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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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은 1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새누리당 김종태(상주) 의원=“제가 장관께 올 추석에 유명한 상주 곶감을 하나 보냈다면, 뇌물인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 의원=“2009년 공무원 행동강령에 선물 한도를 3만원으로 지정해 적용해왔다. 6년이 지났다. 관혼상제가 있을 때 솔직히 장관은 축의금을 얼마 내나.”

 ▶이 장관=“ 3만원은 좀 민망할 때가 있다.”

 ▶김 의원=“당장 화훼농가 매출이 (김영란법 제정 이후) 1조원에서 7000억원으로 줄었다. 시행도 안 하는 법 하나 때문이다. 이래도 김영란법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이 장관=“심각한 소비 위축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고 본다.”

 ▶김 의원=“심각하면 장관은 이 법을 개정할 용의가 있나.”

 ▶이 장관=“ 취지엔 공감합니다만….”

 이날 국감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김영란법에 규정된 ‘금품’에서 농·축·수산물은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승남(고흥-보성) 의원은 “아무리 입법 취지가 좋아도 사회적 약자인 농어가에 피해를 주는 법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장관이 “지금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요구사항 아니냐”는 취지로 반문하자 김 의원은 “일부에선 시행령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며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어촌을 지역으로 둔 의원들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을 만들어낸 건 국회다.

 이날 정부를 다그친 의원들은 정작 지난 3월 국회에서 김영란법이 통과될 때 어땠을까. 김종태 의원은 표결에 불참했고, 김승남 의원은 찬성표를 던졌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란법의 시행령을 만드는 주체는 농식품부가 아닌 국민권익위원회다. 이 장관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머뭇거린 이유다.

 김영란법의 불똥이 튄 농식품부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농식품부의 한 간부는 “농식품부에서 권익위나 국회에 농·축산업계가 걱정하는 부분을 꾸준히 전달해왔는데 국감에서 농식품부를 거꾸로 몰아세우니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농식품부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농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시행될 필요가 있다는 데는 공감한다”며 “하지만 법 개정이나 시행령 제정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다 보니 업계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머쓱했는지 김종태 의원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마디 보탰다.

 “국회의원이 법을 잘못 만들어놓고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다”고.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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