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부품 11조원 재고 … 9억대 레이더 안 쓰고 버릴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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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해상초계기 P3-C는 해군에서 가장 쓰임새가 다양한 무기 중 하나다. 1995년 8대가 도입돼 현재까지 해상 감시활동, 조기경보, 정보 수집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잠수함 위협이 증대되면서 ‘잠수함 킬러’로 주목받고 있고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침몰한 돌고래호 구조 현장에도 동원됐다.

 P3-C의 핵심 부품은 바다 곳곳을 샅샅이 살피는 레이더 세트다. 레이더(AN/APS-137), 적외선탐지체계(IRDS), 전자전장비(ESM), 자기탐지기(MAD) 등으로 구성돼 있고 대당 가격이 9억70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다.

 해군이 레이더 세트를 구매해 놓고도 이를 10여 년 넘게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다가 폐기하거나 해외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8일 드러났다. 고가의 장비를 구매할 때 정밀한 수요 조사를 거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사들여 혈세를 낭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군도 잘못을 시인했다. 해군본부 측은 “수요예측기법의 정확도가 미흡해 실제 수요가 발생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송영근(새누리당) 의원이 육해공군에 문의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이 사용하지 않아 재고로 쌓여 있는 무기 부품은 총 7149만 점, 11조771억원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별로는 육군이 3조8200억원(4488만 점), 해군이 2조1357억원(1318만 점), 공군이 5조1214억원(1343만 점)이다. 수량에서는 육군이, 금액에서는 공군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공군 측은 “항공기 엔진 등 고가품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는 P3-C의 레이더 세트처럼 10년 넘게 사용하지 않아 재고품이 된 것도 2638억원(127만 점)어치였다.

 공군의 경우 “활주로 제설차를 제작해 해외에 판매하겠다”며 밸브 등의 부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제설차를 사겠다는 나라가 없어 부품들은 10년 넘게 창고에 방치돼 있다. 육군도 20㎜ 벌컨포의 컴퓨터 사격통제장치를 구입했으나 10여 년간 사용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해군의 함포사격 통제용 레이더 송수신기는 정작 일선 부대가 필요하다고 신청해 사서 내려보낸 것인데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고 반납됐다고 한다.

 육해공군 중 10년 이상 방치된 무기 부품이 가장 많은 군은 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 해군으로 1685억원(95만 점)어치였다. 해군 관계자는 “해군은 함정에 들어가는 부품이 수천 가지라서 정확한 수요예측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해상초계기에서만 4개 이상의 부품이 10년 이상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 등 해군은 무기를 도입할 당시 수요예측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무기 부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100%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2600억원어치나 되는 무기 부품이 10여 년 동안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는 건 납득이 어렵다”며 “군은 재고량을 정확히 파악해 수천억원의 혈세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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