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원화 가치 1200원대 급락 심상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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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어제는 10.3원 떨어져 올해 예상 저점인 달러당 1200원대를 밑돌았다. 5년2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홈플러스 매각으로 달러 수요가 늘 것이란 전망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컸던 게 일차 원인이지만 원화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크게 보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고 외환위기 트라우마까지 겹친 원화가 다음주 단행 여부를 놓고 전망이 크게 엇갈리는 미국 금리 인상이란 불확실성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급격한 원화 값 하락은 득보다 실이 많다. ‘원화 값 하락=수출 활성화’란 과거의 환율 법칙도 이젠 잘 작동하지 않는다. 중국의 성장 둔화로 세계 교역량이 줄고 있는 데다 우리와 경쟁 관계인 위안화와 엔 가치가 더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신흥국 통화 가치가 1% 하락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수입 물량은 0.5% 줄어들지만 수출량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전했다. 환율 정책이 교역량을 늘리는 데 더 이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금융시장은 충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지난달 중국 증시 폭락 사태 때도 충분히 경험했다. 이틀간 원화가치는 2.29%(27.6원) 떨어지고 코스피지수도 2000선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통화 중에서도 위안화 다음으로 낙폭이 컸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도 신흥국 중 중국 다음으로 많았다. 원화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우리 경제의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기축통화가 아닌 통화 중 자본시장이 사실상 완전히 개방된 통화는 원화가 거의 유일하다. 주요 통화가 출렁일 때마다 우리 증시가 외국인 투자자의 ‘현금자동출납기’ 역할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나. 작은 나라 경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부터 벗어날 때다.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원화 국제화를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단기적으론 수출 을 위해 원화 가치를 낮추려던 정책들을 신중히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