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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얻은 것, 김정은이 잃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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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실장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에 이 땅의 극우와 극좌가 모두 비판하는 분위기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65~70%가 ‘잘했다’는데도 말이다. 과연 극우와 극좌가 대형 사건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는 외신 보도는 어떨까.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승리로 보인다”고 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도 “김정은은 대북 확성기에 약점을 보였다”며 “북의 유감 표명도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왜 극우와 극좌는 박근혜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을 비난할까. 극우는 “100점 맞을 수 있는데 70점밖에 못 받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을 궁지로 몰았는데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못 받아낸 게 아쉬운 눈치다. 반면 줄곧 북한을 편들다 망신당한 극좌는 박근혜의 고득점 자체가 못마땅하다. 시기와 질투에 휩싸인 표정이다.

 북의 치밀한 도발은 성공했다. 몰래 침투해 묻은 목함지뢰가 우리 20대 초반 장병들의 발목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열상감시장비(TOD)에 잡힌 폭발 영상은 국민의 눈에 ‘치 떨리는 비열한 테러’로 각인됐고, 동료 병사들이 안간힘을 쓰며 부상자를 후송하는 장면은 큰 감동을 남겼다. 여기에다 얼마전 영화 ‘연평해전’이 6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북이 기대한 남남갈등은 증발됐다.

 지난달 20일 북의 대북 확성기 포격도 마찬가지다. “확성기를 노린 14.5㎜ 고사포는 야산 숲 속에 떨어졌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탄환을 찾기 어려운 곳이다. 곧이어 쏜 76.2㎜ 평곡사포 3발은 땅에 부딪힐 때 파편이 튀어 바로 육안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탄착 지점이 묘했다. DMZ의 마지막 철책선을 넘어 GP 부근 지뢰밭이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도발 물증을 못 찾도록 계산된 꼼수”라고 했다.

 원래 풀과 나무는 큰 바람이 불어야 분간할 수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준전시의 극한 대치 속에서 우리는 분명한 세 가지 진실을 확인했다. 우선, 한·미 동맹의 소중함이다. 최후의 순간에 우리와 생명을 함께 한 쪽은 미국뿐이었다. 박근혜가 세게 받아친 원동력도 막강한 한·미 동맹 덕분이다. 둘째, 남북 사이에서 어정쩡했던 중국의 미묘한 입장 변화다. 보이지 않게 북을 압박했다. 전승절을 앞둔 일시적 시늉인지, 아니면 한국 쪽으로 체중을 본격 이동하는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셋째, 총칼보다 막강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이다. 대북 확성기는 북한의 급소를 찔렀다. 우리로선 치명적인 비대칭 전력을 확보한 셈이다.

 김정은은 확성기 중단을 얻어냈지만 많은 것을 잃었다. 자작극이라던 목함지뢰 도발부터 사실상 인정해 체면을 구겼다. 또한 우리 6군단장과 28사단장이 청와대와 합참에 보고 없이 곧바로 K-9 자주포로 보복하자 깜짝 놀라 대화에 나섰다. 박근혜의 ‘선 조치-후 보고’는 그만큼 위험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양날의 칼이다. 그나마 김정은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북한의 외교 숨통을 틔우고, 남북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은 다행이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많은 것을 얻었다. 1·21 청와대 습격, 판문점 도끼 만행, 강릉 잠수함사건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의 목함지뢰 도발에도 북의 유감 표명을 받아냈다. 덩달아 지지율이 49%까지 폭등했다. 역시 박 대통령의 최대 우군은 북한이란 점이 다시 확인됐다. 남북의 적대적 공생 관계는 불편한 진실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극단적 선택을 막은 일등 공신은 따로 있다. 바로 서울 거리에 넘쳐나는 미국·중국·일본의 여행객이 아닐까 싶다. 김정은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수도권을 공격하기 어렵다.

 이제 남북이 대결보다 대화에만 집중했으면 싶다. 이번 학습효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남쪽에선 도발 대응 수위의 하한선이 굳어져 버렸다. 북의 도발에 대북 확성기는 자동으로 틀게 되고, 매우 높은 수준의 보복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북한 역시 남남갈등의 기대는 물 건너갔고, 웬만한 무력시위는 먹히지 않게 됐다. 그래서 북이 더 위험한 군사적 모험주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평화가 찾아왔지만 어느 때보다 세심하고 세련된 한반도 위기 관리가 절실한 느낌이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