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그리스 노예와 현대의 '갑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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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 곁의 세계사
조한욱 지음, 휴머니스트
296쪽, 1만3000원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이 옛 말을 빌어 우리가 왜 세계사에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의 선례는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 속 인물 139명을 골랐다. 책에 풀어놓은 그들의 짧은 이야기가 오늘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백년전쟁 초기, 영국군에 항복한 프랑스 칼레 시민의 이야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영국군은 시민을 살려주는 대신 도시의 유지 여섯을 본보기로 처형하겠다고 했다. 이에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였던 사람, 이웃의 존경을 받던 사람 등이 자원해 여섯이 채워졌다. 시민들은 울며 따라 나섰고, 그 광경에 감격한 영국군이 국왕에 간청해 모두가 살 수 있었다.

 그리스의 노예들은 갑의 횡포로 논란이 많은 오늘날을 돌아보게 한다. 노예제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성행했다. 민회가 열리는 민주주의 장소였던 아고라는 곧 노예시장이기도 했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게 노예의 운명인 시대였지만, 노예 살해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있었다. 노예를 학대하는 주인을 고발할 수도 있었다. 현대판 노예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는가. 오늘날의 천박한 ‘갑질’에 견줄 대상을 찾다가 고대 노예제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심정이 저자는 참담하다고 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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