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총리 경제 실패 책임론 … FT “시진핑의 희생양 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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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가 25일 바크잔 사진타예프 카자흐스탄 제1부총리와 베이징 중난하이의 쯔광거(紫光閣·귀빈 접대 장소)에서 만났다. [신화=뉴시스]

상하이 증시가 지난 24일 8.49% 폭락하면서 2007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자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책임론이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 ‘주식 시장 붕괴에 리커창 총리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공산당 내부 소식통과 애널리스트를 인용해 리 총리가 정치적 앞날을 위해 싸워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분석했다.

 윌리 람 홍콩중문대 교수는 FT에 “리 총리의 입지가 최근 위기로 확실히 위태로워졌다”며 “상황이 더 악화돼 (시진핑 주석에게) 희생양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리 총리가 적임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초 정부가 내놓은 증시 부양책을 설계한 주역은 리 총리와 마카이(馬凱) 부총리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주식의 단기 매매를 금지하고 정부기관을 통해 2000억 달러(약 237조44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매입했지만 또다시 폭락장을 맞았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대규모 주식 매입을 통한 증시 부양 방안은 포기한 것 같다고 FT는 분석했다.

지난 3월 31일 리 총리가 취임 후 첫 서방 언론 인터뷰로 라이어널 바버 FT 편집인과 나눴던 대화도 문제 삼았다. 당시 리 총리는 “비록 약한 위안화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중국은 위안화 절하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위안화를 3%가량 평가절하했다.

 리 총리의 경제 관련 부적절한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7월 강력한 증시 부양책이 나온 다음날 리 총리는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증시 폭락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4일 블랙먼데이 당일에도 리 총리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3D 프린팅 산업의 발전을 주문하는 데 그쳤다. FT는 일부 평론가들이 리 총리가 현실을 모른다며 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리 브라운 호주 시드니대 중국연구센터 소장은 “리 총리에게 풀기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총리 교체설은 항상 있어왔다”며 “지금 리 총리를 교체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지만 2017년 당대회에서 체면을 살려주면서 내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리 총리 중도하차설은 지난 연말에도 제기됐다. 당시 중화권 매체 명경(明鏡) 미디어그룹이 발행하는 시사잡지 정경(政經)은 리 총리가 당뇨병과 입지 약화로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의 리 총리 교체설 보도는 2년 앞으로 다가온 시진핑 집권 2기(2017~2022) 인사를 가늠하는 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5중전회)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16일 막을 내린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는 18기 5중전회에서 확정할 13차 5개년(2016~2020년) 경제계획 심의뿐 아니라 리 총리의 거취 문제도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1997년 9월에 열린 15차 당대회에서 당시 리펑(李鵬) 총리가 권력 서열 2위는 유지한 채 전인대 위원장으로 자리만 바꾼 선례가 있다. 당시 서열 5위였던 주룽지(朱鎔基) 부총리가 3위로 올라오면서 5년 단임의 국무원 총리를 맡았다. FT 보도는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리 총리가 서열 2위는 유지한 채 연령 제한으로 은퇴하는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위원장의 지위를 이어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리 총리는 24일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바크잔 사진타예프 카자흐스탄 제1부총리와 만나 “현재 세계 경제 형세는 여전히 모호하고 시장의 변동이 커 중국 경제도 일부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도 “중국 경제는 전체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을 방문 중인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리 총리의 무모한 정책 수단 사용에 대한 비판이 베이징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리 총리 책임론이나 경질설은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경진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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