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야박하게 장수수당을 폐지하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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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80세가 넘었을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수레에 종이박스를 싣고 있다. 키보다 더 높게 쌓고 로프로 묶어 어딘가로 힘겹게 끌고 간다. 동네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아마 이 할머니는 기초수급생계비나 기초연금을 받을 터이다. 상당수 지역의 80, 90대 노인은 장수수당까지 받는다. 이는 전국 87개 시·군·구가 지급하는 월 2만~3만원의 수당을 말한다. 85세 이상이 대상인 경우가 많다. 장수수당은 종이박스 할머니 일당의 네댓 배에 달한다.

 그런데 이게 없어지게 생겼다. 정부 사회보장위원회가 이걸 없애지 않으면 지자체에 가는 기초연금 지원금을 10% 깎겠다고 나오면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중복 복지사업(1496개)의 대표적인 예로 장수수당을 지목했다. 중앙정부에서 기초연금을 지급하니 지자체가 만든 장수수당을 없애라는 얘기다. 기초연금 지원금 10%는 지자체에는 큰돈이다. 일부 지자체는 폐지키로 했지만 상당수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자는 데 누가 토를 달겠느냐마는 정부 조치가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85세 이상의 소득은 60, 70대의 50~70%밖에 안 된다(2014년 노인실태조사). 이들은 국민연금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1988년 근로자 10명 이상 직장인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만 60세 이상, 즉 현재 87세 이상은 가입 자격조차 없었다. 95년 농어촌 주민으로 국민연금을 확대할 때는 85세 이상, 99년 도시 자영자로 확대할 때는 81세 이상이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이들보다 10~15년 젊은 사람에게만 낸 돈보다 훨씬 많이 연금이 나오는 특례노령연금을 적용했다. 이 때문에 80세 이상의 특례노령연금 수령자는 5%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특례노령연금(평균 21만원)이 ‘자식보다 낫다는 효도연금’이 됐다.

 정 장수수당을 없애려면 중위소득 이상만으로 한정할 수도 있다. 저소득 노인은 제외하자는 거다. 지난해 7월 기초연금을 도입할 때 저소득 노인에게 액수를 올리자는 목소리가 강했으나 이 정부는 그걸 무시하고 거의 소득에 관계없이 20만2600원으로 정했다. 85세 이상 노인들은 광복 70년을 있게 한 ‘원조 덕수’이다. 2007년부터 장수수당을 받아온 경기도의 한 노인(88)은 이게 끊긴다는 소식에 분개했다. “2만원이면 적은 것 같아도 노인들에겐 큰돈이야. 다른 데서 아낄 생각을 해야지”라고. 다른 부분은 다름 아닌 무상복지임을 이 정부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