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년 구직자 비웃는 현대판 음서제가 웬 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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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딸을 대기업 법무팀에 취업시키기 위해 청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의원은 지역구인 파주에 대규모 공장을 갖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지원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윤 의원은 딸의 성적이 좋았고, (문제가 불거진 뒤) 회사를 정리했다고 해명했지만 특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선 LG디스플레이는 2013년 9월 원래 변호사 1명을 모집하기로 공고를 냈다가 1명을 추가 채용했다. 모집 대상도 공정거래 분야의 4년 이상 경력자였으나 윤 의원의 딸은 그해 로스쿨을 갓 졸업해 자격 미달 상태였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고위 공직자 자녀 채용 문제가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라며 윤 의원을 국회 징계위원회에 상정할 것을 촉구했다.

 국회의원들의 자녀·친인척이 특혜 취업을 했다는 의혹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새누리당 김모 의원 아들이 단 1명을 뽑는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로 채용된 것을 놓고도 특혜 논란이 일었다.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 572명은 정부법무공단에 김 의원 아들의 공단 취업 평가자료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이들은 김 의원과 당시 법무공단 이사장이 친한 사이였고, 채용 요건이 ‘법조 경력 5년 이상 변호사’에서 ‘사법연수원 수료자나 로스쿨 졸업자’로 변경됐다는 점을 특혜 근거로 들고 있다.

 또 법조인 476명은 감사원이 전직 간부와 전 국회의원 자녀 3명만 원내 변호사로 채용한 것에 대해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2004년 한진그룹에 청탁, 처남을 관계사에 취업시킨 사실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았다.

 청년실업률 10% 시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의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취업을 못한 암울한 청년 세대들은 스스로를 ‘5포 세대’라고 부른다. 밥벌이도 못하는 처지이니 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취업난은 변호사 등 자격증 소지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헌재는 최근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성적을 비공개하면 판검사 임용 및 변호사 채용 과정이 불투명해진다는 신청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구직자들은 기업들에 자신의 최종 성적과 탈락 이유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바늘구멍’ 같은 취업 전쟁에서 구직자들은 채용 과정이라도 투명하고 공정하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등 고위층 자녀의 취업 특혜는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젊은이를 좌절하게 만든다. 부모의 배경으로 좋은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것은 ‘현대판 음서제(陰敍制)’나 다름없다. 이를 뿌리 뽑지 못한다면 청년 구직자들의 좌절감은 사회에 대한 분노로 비화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채용 청탁 의혹을 제기할 때가 많다. 남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게 정당성을 가지려면 국회부터 채용 비리 연루 의원들에 대한 징계 등 자정(自淨)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