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분석] “김정은, 아버지 문상왔던 이희호 외면” … 남북관계 동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방북 일정을 마치고 8일 귀국했다. 이 여사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6·15 정신을 기리며 키우는 데 일조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이 여사가 지난 6일 평양의 한 육아원에서 어린이들을 안아 주고 있다. [사진 김대중평화센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방북을 마치고 8일 빈손으로 귀국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의 면담은 없었다. 남북 관계 개선에 물꼬가 트일 거라는 기대도 무산됐다. 남북 관계 해빙이 상당 기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이 여사에게 보내온 친서에서 “다음 해 좋은 계절에 꼭 평양을 방문하시길 바란다”고 이 여사를 초청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사망 3주기 때 이 여사가 조화를 보낸 데 대한 답례의 편지였다. 이 여사는 2011년 김 전 위원장 사망 당시 평양에 직접 조문을 갔었다. 이 여사와 김정은 간 면담이 성사될 수 있고, 꼬인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는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평양 공항에 영접 나온 맹경일 조선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통해 “방문을 환영한다. 여사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6·15 남북공동선언을 하신 고결한 분”이라는 환영 인사만 전했다. 그게 끝이었다. 대남업무를 책임진 김양건 아태위원장 겸 노동당 대남비서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실상 이 여사를 홀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경남대 김근식(북한학) 교수는 “만일 김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몸값을 높이는 차원에서 이 여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향후 김정은과 만날 수 있는 남측 인사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데 대해 이 여사의 방북이 개인 자격이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그동안 통일부는 수차례 “이 여사의 방북은 개인 차원이며, 정부는 어떤 대북 메시지도 이 여사를 통해 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여사의 역할에 명확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때문에 북측 역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휴식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시길 바란다”는 초청장의 취지에 충실하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을 남측에 떠넘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방북단의 한 관계자는 9일 “김정은 제1위원장과의 면담이 논의됐다가 무산된 건 이 여사의 제한적 역할과 무관치 않다”고 전했다.

 북한으로선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이 방북단에서 빠진 것도 탐탁지 않아 했을 수 있다.

 또 최근 북한의 대남·외교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많다. 북한은 최근 자국 이익에 부합되지 않을 경우 철저히 외면하고, 압박을 받으면 강공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금강산관광지구 내 소나무 숲에 병충해가 발생하자 즉시 남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 5일 열린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기공식에 참석해달라는 남측 정부의 요청은 거절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 교수는 “김정은이 상황을 살펴보다 결국 이 여사와 면담을 해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어설프게 면담을 할 경우 오히려 자신의 입지만 좁아질 것으로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남북 관계다. 전문가들은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8·15 경축사에 담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안팎에선 북한이 호응할 만한 메시지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8·15 직후부터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이달 말까지 실시된다”며 “남북이 긴장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전후로 핵실험 또는 장거리 로켓 발사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최익재·전수진 기자 ijcho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