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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남북 긴장 완화하려면 국내 협상이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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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초빙교수

17대 국회(2004~2008년) 국방위원회 간사 시절,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한미의원외교협의회에서 현재 하원 외교위원장인 로이스(E Royce)를 비롯한 미측 의원들은 서울이 어찌 그리 평온하냐고 의아해했다. 1953년 이후 정전(停戰) 체제하에서 북한의 위협을 일상처럼 여겨온 사회적 심리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한반도는 핵과 연관이 깊다. 역사상 원자폭탄은 유일하게 일본에 투하됐다. 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우라늄 폭탄은 당시 10만 명, 5년 뒤 20만 명을 희생시켰다. 사흘 뒤 나가사키에 떨어진 플루토늄 폭탄은 그해 말 7만 명, 5년 뒤 14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독일 패망 후에도 버티던 일본은 8월 10일 워싱턴에 항복 메시지를 보낸다. 닷새 뒤 조선은 꿈만 같은 광복에 눈물 흘린다. 그러나 강제징용 등으로 두 도시에 있던 조선인은 조국 광복의 뒤안길에서 원폭에 희생됐다. 총 10만 명이 피폭돼 5만 명 사망이라고는 하나 자료조차 불확실하다.

 하마터면 한국전쟁에서도 원폭이 투하될 뻔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검토했다는 비밀문서가 훗날 공개돼 알려졌다. 70년에는 닉슨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철수계획이 통보되고 박정희 대통령의 핵 개발 외교가 시동되다 중단된다. 90년대는 한반도가 핵 안보 논란의 중심이 된다. 냉전 종식과 함께 91년 미국이 한국 배치 전술 핵무기의 철수를 발표하면서 91년 우리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92년 남북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온다. 위원회도 13차례 열렸으나 93년 북한은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

 제1차 북핵 위기는 94년 미·북 간의 제네바 기본협정 서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북한은 비밀리에 핵 개발을 계속하고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는 등 협정을 위반한다. 특히 우라늄 폭탄 개발 사실이 적발되자 2003년 NPT에서 다시 탈퇴해 제2차 북핵 위기로 번진다. 그 해결을 위한 협상체제가 2003~2008년의 6자회담이다. 9·19 공동성명(2005)과 2·13 합의(2007)가 나오지만 또다시 허사가 된다. 오히려 북한의 세 차례(2006·2009·2013) 핵실험 강행으로 모든 북핵 합의가 파기된다. 결국 핵 보유국임을 인정받으려는 노림수로 일관한 끝에 김정은 정권은 핵 보유를 김정일의 최대 업적으로 헌법에 표기하고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에 성공했다고 선언한다.

 6자회담은 중단 7년째다. 13년을 끌던 이란 핵 협상은 타결됐다. 미 공화당의 반대와 이스라엘 등 중동발 후폭풍으로 새로운 리스크가 예고되고 있다. 두 협상에는 차이가 있다. 이란은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 게 아니라 오히려 갖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핵무장화를 차단하는 ‘비확산’이 협상 목표였다. 반면 북핵 협상은 핵무기와 시설을 해체하는 ‘비핵화’가 목표다. 더 어렵다.

 또한 이란 핵 협상 주체인 5개 유엔 상임이사국(미·러·중·영·프)과 독일·유럽연합(EU)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았다. 한데 6자회담은 남북한과 중·미·러·일의 입장이 엇갈린다. 오바마 정부는 클린턴·부시 대통령 시절의 나쁜 기억 탓일까, ‘전략적 인내’로 소극적이다. 국무부는 북핵에 이란 모델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은 제재보다는 대화가 우선이라 하고, 일본과 러시아는 큰 관심이 없다.

 북핵은 남북의 군사적 신뢰와 맞물려 있다. 그런데 신뢰를 쌓으려 해도 북은 남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93년 북·미 제네바 협상에서도 드러났듯이 한반도 핵과 미사일 협상을 북·미 간 어젠다로 못 박고 주한미군 철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니 비핵화 압박과 동시에 교류 협력을 추진한다는 우리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무색하게 핵전쟁 위협 등 긴장 조성 행위의 연속이다.

 묘수가 없는 퍼즐이다. 그러나 북한의 국제질서 위배와 남북의 현격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안보에서 우리의 주체적 역할을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 국회의원 시절 EU 외교관으로부터 들은 말이 잊히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 구축에서 어느 나라가 한국만큼 절실하겠는가.” 이란 핵 협상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어느 수준의 딜을 하는 편이 낫다(Some deal is better than no deal)”면서 비판은 많이 하는데 더 좋은 대안은 들은 게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시사적이다.

 남북 긴장 완화로 나아가는 데 선행돼야 할 것은 국내 협상이다. 우리끼리 진보와 보수로 갈려 논의조차 제대로 못한다면 누구를 향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국내 여론을 모으고 보다 적극적으로 주변국을 설득해 국제적 합의체(coalition)를 강화하는 정치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지금이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KAIST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