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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키웠다 … 북한 ‘빨치산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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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북한 축구가 ‘빨치산 공격 전법’으로 동아시안컵에서 선전하고 있다. 강한 체력을 앞세워 경기 내내 상대를 압박한 뒤 역습을 통해 득점을 노리는 게 핵심이다. 신장 1m94㎝의 북한 공격수 박현일(오른쪽)이 지난 5일 중국전에서 공중볼을 따내고 있다. 그의 별명은 ‘레반동무스키’다. [우한=뉴시스]

2015 동아시안컵 축구대회가 개막하기 전까지 북한 남녀 대표팀은 ‘미지의 팀’이었다. 여자팀은 2011년 독일 여자월드컵에서 일부 선수가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여 지난달 캐나다 여자월드컵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남자팀은 대대적인 세대교체로 멤버를 확 바꿨다. 달라진 선수 구성과 함께 북한은 ‘빨치산 공격 전법’이라는 신무기를 가져왔다. 동아시안컵에서 여자팀은 2연승, 남자팀은 1승1패로 선전 중이다. 남녀 모두 한국과 우승을 다투게 됐다.

 러시아어 ‘파르티잔(Партизан)’에서 유래한 빨치산은 비정규부대, 게릴라를 뜻한다. 객관적 전력이 열세일 때 적 배후를 침투해 제압하는 부대를 일컫는다. 김창복 북한 남자팀 감독은 “빨치산 공격 전법은 ‘공격을 위한 방어’가 핵심이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전방부터 압박하며 적극적으로 역습을 노린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빨치산 공격은 평균 기온 섭씨 33도, 습도 70%에 달하는 중국 우한의 찜통더위 속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북한 남자팀은 지난 2일 일본과의 1차전에서 0-1로 뒤진 후반 33분 이혁철(23)의 동점골, 후반 43분 박현일(22)의 헤딩 역전골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신장 1m94㎝의 장신 공격수 박현일의 활약이 특히 빛났다. 국내 팬들은 독일 바이에른 뮌헨 공격수 레반도프스키(1m85㎝)에 빗대 박현일에게 ‘레반동무스키’란 별명을 붙여줬다.

 여자팀 역시 2경기에서 7골을 퍼부으며 화끈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17세 신예 위정심과 ‘국민영웅’ 나은심(27)이 2골씩 넣었다. 실력뿐 아니라 팀 분위기도 바뀌었다. 북한 선수들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만 해도 한국 취재진을 철저히 외면했지만, 동아시안컵에서는 밝은 표정으로 개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빨치산 축구’ 배경에는 축구 매니어로 알려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있다. 김정은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소속 공격수 웨인 루니(30)의 열성 팬이다. 부인 이설주와 축구 관람을 종종 한다. 2011년부터 김정은은 ‘북한축구대표팀 개혁 방안’을 주도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이 44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3전 전패로 탈락한 게 계기가 됐다.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북한은 평양국제축구학교를 세워 선수 발굴과 육성에 힘쓰고 있다.

 선수 선발 방식부터 확 바꿨다. 각 연령대별로 전국 각지에서 뽑은 4000명의 유망주 가운데 30명을 추려 집중 육성한다. 그중 15명은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고, 나머지 15명은 국내에서 가르쳐 내부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동아시안컵 대표팀 멤버들은 ‘김정은 키즈’로 불린다. 나은심은 “원수님 명령을 받은 전사는 그저 ‘알았습니다’란 대답밖에 없다. 사상의 힘이 곧 조선(북한) 축구의 힘이다. 정신력으로 달리면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북한 최고 명문 축구클럽 4·25에서 대표팀 멤버 대부분이 나왔지만 최근엔 천리마·소백수·평양시체육단 등 여러 클럽에서 대표팀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북한과 우호적인 조총련계 재일동포 선수들도 적극 활용한다. 과거엔 정대세(시미즈S펄스)·안영학(요코하마 FC) 정도만 선발 대상이었으나 상비군 리스트가 40~50명으로 늘었다.

 남아공 월드컵에 북한 대표로 출전한 정대세(북한 A매치 33경기 15골)는 “현 북한대표팀은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내다본 구성”이라면서 “A매치 평가전을 자주 치르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 북한 축구리그에 대표팀을 포함시켰다. 대표팀 경기는 응원하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귀띔했다.

 동아시안컵 동반 우승을 노리는 한국 남녀대표팀은 북한의 빨치산 축구를 넘어야 한다. 여자팀(2승)과 남자팀(1승1무)은 각각 8일과 9일 오후 6시10분 북한과 최종 3차전을 치른다. 두 경기 모두 JTBC가 단독 생중계한다.

송지훈 기자, 우한=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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